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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 광지원 농악단 “시민과 동행 했다”지난 4일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총감독 김홍수) 제6회 정기공연 희망과 행복의 판스테이지 ‘동행’ 공연이 곤지암도자공원 대공연장에서 펼쳐졌다. 광주시 주최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 주관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광주시무형문화제 제3호 '광지원농악'의 보존 계승 및 시민의 문화적 향유를 촉진하기 위한 정기공연이 주제 대로 시민과 동행했다. 악장 염두용 외 12인의 단원들이 농악의 신명을 펼첬다. 한편 이번 공연은 제27회 광주왕실도자컨퍼런스 축하공연과 제20회 세계관악컨퍼런스 광주시 개최 성공을 기원하는 공연으로 뜻 깊었다.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의 ‘남한산성의 울림’ 임웅수 명인의 ‘상공놀이’, 임성준 명인의 ‘고창고깔소고춤’. 이선영 외 4인의 '경기민요', 김경수 명인의 ‘채상설장고’, 박정철 명인의 ‘구미무을농악 쇠놀이’, 서한우 명인의 ‘버꾸춤’ 유희스가,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 12발 상모돌리기, 휘날레는 대동한마당 출연진 모두와 관객이 어우러져 난장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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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국의 지역춤, 전북지역춤이병옥/전통예술 연구가, 용인대 무용학과 명예교수, 무용평론가 부산·경남지역춤과 광주·전남지역춤에서는 기후와 지리 등 생태환경적 차이로 형성된 춤 전승과 특징에 비중을 두어 연재하였다. 그러나 대구·경북과 전북 등 북도지역은 남도지역보다 인구·경제·사회환경면에서 현재는 약세지만, 조선시대에는 영호남의 거점지역으로 정치·문화면에서는 중심지였다. 경상감영(대구)과 전라감영(전주)에는 관찰사(觀察使, 監司)를 비롯한 벼슬아치(官員)와 관속(官屬, 아전과 하인), 그리고 지방 호족(豪族)들이 많아 매우 보수적이지만 이들은 문화예술의 향유층이었기에 자연히 문화예술 종사자도 많아져 교방(敎坊)의 관기(官妓)와 사기(私妓), 장악청(掌樂廳)의 악공(樂工)과 재인(才人), 광대(廣大)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북도지역은 저명한 춤꾼과 소리꾼들도 많았으며 전승 뿌리도 깊었다. 그래서 지난 대구·경북지역춤에서는 경상감영의 춤 전승배경을 바탕으로 배출한 많은 근현대 춤 인물에 비중을 두어 연재하였던 것이다. 전북지역춤 역시 전라감영의 역사문화적 인프라와 예술환경의 영향으로 배출하게 된 많은 춤 인물에 비중을 두어 연재하고자 한다. 전북출신으로 중앙(서울)무대에서도 유명한 한국발레의 대부 임성남,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 한국춤극의 대가 국수호, 승무의 명무 채상묵 등 장르별 대가들이 많은 배경도 살펴본다. 또한 전북지역 전통춤의 계통별 특성과 전승자들의 계보와 전승내용을 살피고, 전북 전통춤의 대부 최선(최정철)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5명의 인간문화재 춤 제자를 배출한 전승배경도 관심있게 살펴본다. 아울러 민간춤에서 농악분야는 많이 지정된 반면, 탈춤분야는 한 종목도 지정되지 못한 연유도 알아본다. 조선시대 전라감영과 교방춤 전승 전북지역은 마한시대와 백제를 거쳐 통일신라기 견훤이 전주에 후백제를 도읍하였다. 조선왕조 500년을 꽃피운 이성계(전주이씨 시조 이한(李翰)의 21세손)의 어진(御眞)과 조선왕조실록이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봉안되어 있다. 그래서 전주를 ‘천년의 고도’, ‘조선왕조의 발상지’라 부른다. 조선 초기 전주에 설치된 전라감영(全羅監營, 전북기념물 제107호)은 1896년까지 전라남·북도를 포함하여 제주도까지 통할하는 관청으로 성곽에 둘러싸인 전주부 내에 있었으며, 전주 관아(官衙)가 반대편에 있었다. 전주부(全州府)·광주목(光州牧)·순창군(淳昌郡)·순천좌수영(順天左水營)·무주부(茂朱府)·제주목(濟州牧)에 각각 교방(敎坊)이 설치되었었다.<『호남읍지』(1895)> 전주부는 교방과 장악청(掌樂廳), 광주목은 교방과 교방청, 순창군은 교방, 순천 좌수영은 기생청, 무주부는 교방청, 제주목은 장춘원으로 명칭을 달리 지칭하였다. 무주부 교방에서는 <포구락>·<고무>·<선유락>·<검무>·<승무>·<헌선도>등 6종의 춤과 이에 수반된 반주, 그리고 소품목록이 보존되어 상당히 큰 규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궁중무였던 <포구락>·<선유락> 등이 지방 교방에서도 연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궁중무용과 지역 간의 교섭양상을 뚜렷하게 살필 수 있었다.<『호남읍지』(1895년), 『茂朱府邑誌』> 일제 강점기 권번조직과 전승춤 전북지역에 조선후기까지 전주·무주·순창·남원(남원은 기생 기록만 있음)에 설치하였던 ‘교방’(敎坊: 조선시대 여기(女妓)를 관장한 기관)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전주와 남원에만 ‘권번’(券番: 일제강점기 기생조합의 일본식 명칭)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남원지역에 교방설치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생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와 반대로 교방이 존재하지 않았던 군산·정읍·이리(익산)·부안지역에 권번과 예기조합이 새롭게 설립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근대시기 경제력 약화와 교통망 부족으로 말미암아 무주·순창에서 교방이 사라지게 되었고, 반면에 일제강점기 경제 중심지로 급부상한 군산, 그리고 호남선과 전라선의 역이 개설되면서 은행이 설립되는 등 경제형 도시로 탈바꿈한 익산과 정읍에 예기조합 내지 권번이 설치되었다. 1916년의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령 제3호<요리옥·음식점 영업취체규칙>(식품위생법)에서 예기(藝妓:가무, 서화, 시문 등 예능을 익혀 손님을 접대하는 기생)·작부(酌婦: 술접대부)·예기치옥(藝妓置屋: 예기들의 거처사옥) 등 요릿집 위생관련 법안규칙에서 기녀들을 명시한 법령이 나타난다. 당시 전주에는 1915년에 예기조합(藝妓組合), 1923년에 전주권번이 설립되었고, 군산에서는 1923년에 군산 예기치옥(藝妓置屋), 남원은 1926년 예기조합과 권번(券番)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정읍은 1928년 예기조합, 이리(익산)는 1929년 기생조합, 1939년 예기조합이란 명칭으로 각각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조선미인보감』 기록을 보면 1923년 당시 전주권번의 기생 규모는 최소 50명은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북 출신으로 서울에서 두각을 나타낸 기녀들은 한성권번에 조추월(曹秋月)과 조산월(曹山月), 신취옥(申翠玉) 등이 있었으며, 한남권번에는 장옥주(張玉珠), 송경주(宋瓊珠), 조산옥(趙珊玉)이 활동하였다. 전북 출신의 기생들은 고향에서 기예능을 익힌 후 경성에 진출한 것이다. 이들은 궁중춤(呈才)보다 <승무>·<살풀이춤>·<입춤>·<검무>·<화관무> 등의 민속춤을 주로 추었다. 교방(권번)계통춤의 전승과 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전북지역의 전통춤은 교방계통춤과 재인계통춤, 두 계통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전승되고 있다. 교방계통춤이란 교방·권번·기방 등에 소속되어 추던 기녀들의 춤으로 곱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추는 여성 성향의 춤을 말하며, 반면에 재인계통춤이란 재인·광대들에 의해 추던 춤으로 투박하고 담백하지만 고고하고 품격있는 남성 성향의 춤을 말한다. 하지만 남성이라 할지라도 교방계춤을 전승한 춤꾼들은 곱게 추는 경향이 있고, 여성일지라도 재인계춤을 전승한 춤꾼들은 담백하게 춤을 춘다. 예를 들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였던 이매방(27호 승무· 97호 살풀이춤)은 어린 시절 목포권번장 함국향으로부터 권번춤을 체득하였기에 곱디 고운 교방계통춤으로 전승하였으나, 반대로 한영숙(국가 27호 승무 보유자)은 처음부터 재인 한성준으로부터 춤을 배웠기에 담백한 재인계통춤의 성향을 보였다. 전북지역의 교방계춤은 여러 지역 권번의 명무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신분적 차별대우로 대를 잇지 못했으나 전주 전동권번의 이추월, 남원 권번의 조갑녀, 군산권번의 장금도만이 어렵게 춤맥을 잇고 있다. 전주전동권번의 이추월의 춤을 최선(호남살풀이춤, 전북15호)이 오롯이 이어받아 전북 교방계춤의 중심축을 이루게 되었으며, 최선(본명 최정철, 1935~)의 문하생으로 성장한 제자들이 각기 다른 종목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분화 발전하였다. 최선의 제자들로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된 이들은 김광숙(예기무, 전북48호), 이길주(호남산조춤, 전북47호), 고선아(한량무, 서울45호), 김나연(화관무, 황해 4호), 문정근(전라삼현승무 전북52호) 등 5명이나 되며, 채상묵(전통춤협회이사장)을 비롯하여 장인숙(호남살풀이춤보존회장), 허순선(광주대 교수), 정은혜(충남대 교수), 김희숙(영남대 교수)들이 있다. 이처럼 국내에서 많은 제자 보유자, 대학교수, 명무들을 양성한 최선은 금년(2018)에 전주와 서울에서 제자들과 함께하는 자랑스런 <사제일심(師弟一心)>춤판을 가졌다. 원광대 명예교수인 이길주(전북47호, 호남산조춤)는 어린 시절 최선의 문하에 입문하여 전북최초로 대학 무용학과를 개설하여 전북지역 대학무용발전에도 공로가 크며, 호남산조춤은 이추월-최선-이길주로 이어지는 교방계춤으로 산조연주에 맞춰 멋진 춤사위를 발휘하는 한국 전통춤의 대표적 특성인 한과 신명을 한층 더 자유롭게 승화시켰다. 김광숙의 예기무(전북 48호)는 부채춤-수건춤-접시춤이 복합된 교방춤으로 어린 시절 최선의 문하생을 거처 정형인, 박금슬에게서도 춤을 사사받았다. 고선아 역시 최선의 문하생으로 상경하여 강선영 태평무을 이수하고 경기지역 4인 군무인 한량무 보유자(색시춤, 서울 45호)가 되었다. 김나연도 최선류 호남살풀이춤 이수자로 화관무 보유자(황해 4호)가 되었다. 그밖에도 남원권번의 조갑녀의 춤은 딸 정명희로 이어지고 있으며, 군산권번 장금도의 춤은 송미숙(진주교대)과 신명숙(대진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인계통춤의 전승과 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한편 전북지역 재인계춤의 대부는 정읍출신 정자선(1872~1949)을 꼽게 되는데, 소리와 기악은 물론 춤도 뛰어났으며, 그의 전주 제자로는 김소란·정형인·박금슬·김유앵·장월중선 등이 뒤를 이었다. 그 중에서도 수제자이며 장남인 정형인(1896~1973)의 뒤를 이은 제자들은 금파 김조균(1940~1998, 한량무, 전북 17호)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국수호(전 국립무용단장)와 농악명인 정인삼(소고춤, 경기56호)도 있다. 금파(김조균)를 중심으로 대를 이은 국수호·고선아·김숙·김무철(한량무, 전북44호)를 비롯한 노현택(무용협회 전주지부장)·문정근(전라삼현승무, 전북52호)·심가영와 심가희(삼례문화예술촌 대표)·김애미·이정노·정길만(국립무용단원 훈련장) 등이 있다. 전북지역의 재인계춤은 정자선-정형인-김조균(금파)으로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김조균(금파)는 한량무로 보유자 인정을 받았으나 일찍 작고(1940~1998)하는 바람에 전승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아들 김무철이 부친의 춤 불씨를 살려 다시 한량춤(전북 44호)으로 인정받았다. 정자선-정형인-박금슬-문정근으로 이어지는 전라삼현승무(전북52호, 문정근)도 전북의 재인계춤의 또 다른 큰 줄기를 계승하고 있다. 정읍의 전계문(全桂文,1872~1940, 정읍예기조합)은 춤 분야도 뛰어났던 것으로 전한다. "전계문은 당숙인 전도성(全道成,1864~?)의 수행 고수로 활동한 인물이다. 전계문은 북뿐만 아니라, 춤과 정악·양금·가야금·거문고에 이르기까지 두루 능통했는데 특히 <한량무>가 일품이었다. 한성준(1874~1941)이 일 년에 한두 번씩 정읍에 내려가 보름 정도 머물며 전계문에게 북가락과 춤사위를 배웠다.”는 사실은 이보형(음악민속학자)이 송영주(유명 고수였던 태인 출신)를 대담한 결과 근대 전통춤의 대가 한성준이 전계문에게 태인(泰仁)으로 내려와 배운 사실을 직접 확인하였다.<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판소리유파』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6)(서울: 문화재관리국, 1992), 119쪽> 또 하나의 특별한 재인계춤은 정읍의 전계문으로부터 한성준을 거치고 멀리 서울의 김보남을 거쳐 다시 정읍으로 돌아온 신관철로 계승한 수건춤(전북59호, 보유자 신관철)이다. 오늘날 살풀이춤은 1930년대 초 한성준이 정읍의 전계문을 찾아가 춤을 배울 때 수건춤을 살풀이장단에 추는 것을 보고 제1회 한성준 춤발표회에서 처음으로 ‘살풀이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부터 보편화된 명칭이었다. 이후 수건춤이란 명칭이 사리지는 듯하다가 최근 원래 명칭인 ‘수건춤’을 찾아 쓰는 경향으로 지정된 것이다. 익산시의 한국춤 분야는 원광대 무용학과 이길주 교수의 제자로 고명구(무용협회 익산시 지부장), 김명신(전통춤협회 익산시 지부장), 이한녀, 장태연, 장미나(국악원 무용단) 등이 활동 중이며, 익산의 최태열(마한백제무용단 단장, 전북 고부출신 은방초 사사)은 무용교육자 겸 무용가로 ‘길거리 캐스팅’처럼 어린 유망주들을 발굴 육성한 중견남성무용가들로는 이강룡(전 대전시립 지도위원), 박종필(익신시립 무용단 예술감독), 노수은(전 김포예총 회장), 조남규(상명대 교수, 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김진원(서울시립 무용단), 홍기태(부산시립 수석안무자), 박근식(무용학원운영), 소병구(행안부 지방자치 인재개발원 교수, 전통문화), 김지립(무용학원운영) 등이 있으며, 여제자 이미숙(의정부시무용단 예술감독)도 의정부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군산시에는 육정림의 제자 김덕림, 송미숙(진주교대 교수), 김정숙(군산시 지부장), 이한녀( 전국립국악원 무용단) 등이 있으며, 이운태 군산여고 교사로부터 최은정(태평무 호남 지부장)이 사사받아 군산에서 활동하면서 강선영 태평무를 이수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인물로 본 한국무용사』(예론사, 1992)를 출간한 전주출신 오화진은 아시아 무용협회를 운영했다. 전북의 창작춤과 발레 전승 전북의 현대춤과 발레는 이시이바쿠(石井漠, 1887~1962)와 최승희(1911~1967)의 제자인 김미화(본명 김옥순, 1922~1984)가 전라북도의 ‘창작춤의 효시’라고 본다. 최선(호남살풀이춤 보유자)도 어린 시절 김미화로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최승희와 김미화에게 사사받은 육정림(1928~1986)이 군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마찬가지로 최상철(중앙대 교수)도 군산출신 현대춤 교육자이다. 한국발레계의 대부 임성남(1929∼2002, 초대 국립발레단 단장)은 전주사범학교 시절 한동인 발레단 공연을 보고 제자가 되어 발레를 시작하여 일본유학에서 핫도리 시마다(전북 익산출신 제일교포)에게서 발레를 배워 서울에서 활동하였고, 군산출신 김긍수(중앙대 교수, 전 국립발레단장)도 발레 전공자이다. 전주출신 김양곤(서울교대 교수)은 1956년 한국교육무용가협회를 결성하여 파조, 박외선, 정혜옥 등과 함께 활동(1957년 대표최고위원)하면서 서울교대 무용교수로 교육(초등무용)에 공헌하였으며, 제자에는 육완순(전 이화여대 교수, 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 이병옥(용인대 명예교수, 춤비평, 이론은 정병호 교수 사사)이 있다. 미국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아온 조원경(전북김제 출신, 1929~2005)도 발레와 창작춤 전공으로 『무용예술』(해문사, 1967) 저서를 발간했었다. 한국현대춤의 거목인 육완순(1933~)도 김미화에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무용의 꿈을 키워 이화여대 교수로 현대춤계에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전주성심여고 무용교사였던 박순자(부산대)로부터 이혜희(전북대, 발레), 손정자(우석대, 발레)가 대를 잇고 있다. 그밖에도 권오희에서 양정수(수원대)로 현대춤이 이어지고 있다. 무형문화재 연희춤-탈춤은 없고 농악만 발달 춤과 관련한 연희종목은 탈춤과 농악춤이다. 그런데 영남지역에 비해 호남지역은 탈춤종목은 한 종목도 전승하지 못해 지정된 종목도 없다. 이유는 풍농기원의 마을축제가 농악과 탈춤이 함께 발원하여 전승하는 과정에서 분화발전하게 되었는데, 호남지역은 농악이 발달하다보니 탈춤은 농악의 잡색놀이(양반, 중, 포수, 창부 등)로 예속되어 전승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농악은 전라북도 내륙과 산악지대의 호남 좌도농악(필봉, 남원)과 해안과 평야지대의 우도농악(정읍, 부안, 김제, 고창)으로 각기 다른 특성을 보이며 분화 발전하였다. 호남좌도농악은 고깔보다 전립을 쓴 채상소고춤이 눈에 띄며, 우도농악보다 가락이 빠르고 윗놀이(채상모, 부포상모)가 발달하였으며 판굿중심의 진풀이가 발달하였다. 호남우도농악은 외관상 고깔소고춤이 눈에 띄며, 악기별 개인놀이(쇠춤, 장고춤, 소고춤)가 발달하였다. 내용에서도 장구가락과 설장고춤이 발달하였고, 윗놀이(상모춤)보다 밑놀이(악기가락춤) 발달하였다. 전북 좌도농악의 대표인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임실필봉농악(국가11-5호, 보유자 양진성)은 쇠잡이(꽹과리, 징)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모자)를 쓰며 나머지는 고깔을 쓴다. 농악의 종류에는 섣달 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 당산제굿, 보름굿과 징검다리에서 치는 노디굿, 걸궁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이 있다. 남원농악(전북7-4호, 상쇠보유자 류명철)은 전북 남동부의 좌도농악을 대표하며 가락이 다채롭고 놀이동작이 세련되고 섬세하며, 농악대원들은 꼭지에 흰 새털이나 종이 오리를 꾸며 돌리는 상모가 특징이다. 전북우도의 부안농악(7-1호, 상쇠보유자 라모녀(금추), 며칠 전에 작고)은 음악·춤사위·놀이가 완벽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으며, 생동감 넘치는 가락이 많다. 정읍농악(전북7-2호, 소고보유자 김종수, 유지화)은 세습무 집단의 뛰어난 예능과 접합되어 예술적 수준이 높다. 김제농악(전북7-3호, 상쇠 이준용, 박판열)은 평야지역의 두레굿과 마을 대동굿의 형태로 농악을 전승해 오다가 좀더 전문적인 예인집단에 의해 발달되어 있다. 고창농악(전북7-6호, 설장고 정기환, 소고 정창환)은 예로부터 고창, 무장, 영광 등지의 해변을 끼고 형성된 농악으로 잡색놀음과 고깔소고춤이 발달하였다. 전북 지역에 춤 명인들이 많이 배출된 연유 전북지역은 현재 국내에서 대도시(광역시)도 없고 인구도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춤, 현대춤, 발레 등 여러 장르에 걸쳐 굴지의 춤 명인들이 많이 배출된 배경을 짚어본다. 첫째, 조선시대 전주교방을 비롯하여 무주교방, 순창교방, 남원에는 수많은 관기와 악공들과 풍류객들이 존재했던 곳으로 지역춤과 소리문화의 인프라가 오랜 역사 속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호남과 제주를 아우르는 정치·문화·예술의 중심지인 전라감영(全羅監營)과 전주부(全州府)가 있던 곳으로 지금도 전주시내 초입에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라는 일주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둘째, 전북지역은 ‘전주대사습(全州大私習)놀이’로 조선시대 국내 최고의 예술가들이 운집하던 고장이었다. 조선봉건사회에서는 예능인들을 천시했지만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받은 명창명인들은 어전명창의 명예를 얻었고, 벼슬을 제수 받는 경우도 있었기에 예술가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신분상승의 명예로운 삶으로 생각하는 문화적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조선시대 전주 지방에서 거행된 예능경연대회(藝能競演大會)로 본래는 숙종(1674~1720) 때 전주에서 거행된 궁술대회(弓術大會), 영조(1724~1776) 때 전주 특유의 통인물(通引物)놀이, 그리고 철종(1849~1863) 이후 국내 최초로 경창(競唱)된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무예(民俗武藝)놀이의 총칭이었다. 순조(1800~1834) 때에는 대사습놀이에서 장원한 우수 광대에게 가자(嘉資)와 명창의 칭호를 하사하였다. 한 동안 이 놀이는 중단되었다가, 1975년에 다시 복원되어 판소리·농악·무용·시조·궁도 등 5개 부문의 경연으로 시작하였고 오늘날에는 판소리·기악·민요·시조·전통무용·농악부문으로 경연이 정착되었다.<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11. 2., 도서출판 보고사> 셋째, 농악의 발달은 남성춤 전공자 확산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우도농악은 설장고춤, 상쇠춤, 소고춤 등 개인놀이가 발달하여 농악전공자들이 춤전공자로 전향하는 사례가 많았다. 전주농고 농악단 출신의 국수호, 손병우(우석대 교수)를 비롯하여 정인삼(전 민속촌 농악단장, 소고춤보유자) 등 많은 남성무용가들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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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부안 전국농악경연대회 성료제11회 전국농악경연대회가 5월 6일 부안 해뜰마루에서 개최되었다. 비가 와서 낭주중학교 대강당으로 이동하여 경연대회를 마치었다.부안농악보존회(회장 김기곤)가 주최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1987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된 '부안농악'의 이동원 선생을 추모하는 경연으로 민족의 혼과 숨결이 담긴 우리 전통가락을 계승·발전시키고 호남우도 ‘부안풍물’을 널리 알리는데 목적이 있다. 시상은 대상(국회의장상)과 최우수상(문화체육부 장관상) 우수상(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준우수상(전북도지사상), 장려상(부안군수상)이 주어졌다. 종합대상(국회의장상)에는 '세한대학교 전토연희학과'가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최우수상에는 (사)전통소리마을예술진흥회, 우수상에는 고창농악전수생연합 '고스란히', 준우수상에는 '전주농악보존회', 장려상에는 '의령집돌금농악보존회'가 수상을 했다. 김기곤 회장은 "우리 가락의 대중화와 후진 양성에 헌신하신 고은 이동원 선생의 뜻을 기리는 대회로 기량이 뛰어난 전국의 풍물인과 관람객이 함께 어우러져 신명나는 경연의 장을 마련했다. 부안농악보존회는 전통을 널리 알리고 육성해 그 명맥을 이어가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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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예술축제 '농악명인전', 성료(사)대한민국농악연합회(이사장 임웅수)가 주최하는 23대한민국 민족예술축제 '농악명인전'이 성료되었다. 전국의 농악 명인들이 총출연하는 이 농악명인전에 참가 명인은 복성수(개꼬리 채상소고놀이), 오승재(김동언류 설장고), 임성준(고창농악 고깔소고놀이), 성광우(김기복류 쇠놀음), 김병천(진도북놀이), 이윤구(채상 북놀이), 서한우(서한우 설장구춤), 손영만(김천금릉빗내농악 상쇠놀음)과 일행이 풍성한 판을 펼첬다. 2015년 창립된 대한민국농악연합회 임웅수 이사장은 "두레 공동체의 정신과 지혜를 오늘의 농악 공동체를 통해 실행하자”는 선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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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대한민국민족예술축제 '농악명인전'......'.K-농악' 도약대한민국농악연합회(이사장:임웅수)가 인천시 국악전용극장 잔치마당에서 제2회 대한민국민족예술대축제 농악명인전을 26일 개최한다. 2015년 결속된 대한민국농악연합회가 창립기념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을 널리 알리고 전수하기 위해서, 나아가 'K-농악'으로 도약하기 위한 시도로써 전국 농악보존단체가 자비를 모아 자발적으로 농악명인전을 준비했다. 임웅수 이사장은 "K-농악'의 문을 열고자 합니다. 오늘날 세계인을 감동시킨 '한류'의 출발은 바로 전통문화입니다. 올해에도 대한민국 민족예술축제,농악명인전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이 땅에는 마을 사람들이 두레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은 두레 정신을 삶의 지혜로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은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여 왔고, 세대와 세대는 물론 지역과 지역를 이어주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농악은 전통사회 공동체 문화를 대표하는 민속종합예술로써 지난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전국 농악단체와 농악인들은 2018년 11월 27일을 ‘농악인의 날’로 지정하여 잊혀져가는 농악의 부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김경수 단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 여는 두번째 농악명인전 무대는 '전통'을 찾아가는 길을 모색했다. 이사회와 각 지역 단체가 1차, 2차, 선정하여 최종 연희자 8명을 무대에 올렸다. 평생 농악을 생업으로 30여 년 전수 해오신 기량이 높은 명인으로 구성되었다. 농악 장르 중 개인적 예능을 보여줄 수 있는 종목을 선정했다. 그런만큼 무대에서 개인의 특성이 집중 되도록 연출했다. 개인적 기량을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객석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은 지역별 특성을 나타내는 장르가 바로 브랜딩과 연동되는 무대가 되어서 기대가 된다. 전설적 인물 안성 남사당바우덕이 계보를 잇는 '김기복류 쇠춤'은 고유한 신명을 선사할 것이다. 널리 알려진 진도의 명물 '진도북놀이'는 양손에 채를 잡고 북소리와 하나가 되어 자유로운 춤사위를 선사하는 역동적인 진도북춤의 진수를 선사할 것이다. 농악은 지역마다 맛이 다른데 그 맛의 비결은 그 지역의 자연 경관을 닮았다. 농악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지역의 전승행사와 자연적 환경 여건에 따라 가락과 연주형태가 변형되어 왔다. 크게 경기·충청도의 웃다리농악, 경상도의 영남농악, 강원도의 영동농악, 전라도 서쪽 평야지대의 호남우도농악과 동쪽 산간지대의 호남좌도농악으로 구분된다. 호남우도는 평야지대이므로 굿거리 같은 맛에 다양한 가락이 있고, 호남좌도는 산간지역이므로 가락이 빠르고 힘이 있다. 경상도는 빠름과 동시에 북이 잘 발달했고, 강원도는 경상도보다 더 산간이 높은지라 더 담백하고 빠르고 격렬한 맛이 있다. 그리고 경기·충청은 비산비야(非山非野)라 가락이 두마치가 더 많고 평탄한 맛을 준다. 웃다리농악이라 일컫는 경기·충청 일대의 농악은 상쇠의 기능이 우세하여 꽹과리가 중심이 되고, 호남 농악은 장고가, 영남농악은 북이 중심이 되어 연주된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 같다" 우리 전통문화의 멋과 맛을 이번 농악명인전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격조 있는 무대가 되리라고 본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담보한 이번 농악명인전에서 명인들이 펼치는 'K-농악'의 진수를 한자리에서 징하게 맛볼 수 있다. 복성수의 '개꼬리 채상 소고놀이' '소고춤'은 계통별로 농악계 소고춤, 기방계 소고춤, 선소리계 소고춤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복성수 소고춤'은 대전농악을 기반으로 한 채상소고와 고깔소고춤으로 구별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개꼬리 채상소고놀이' 춤사위가 선사된다. (이보름/쇠, 강유진/ 징, 이지희/장구, 복권민/북, 하은비/태평소) 오승재의 '김동언류 설장구' 우도농악의 꽃인 '설장구'로 김오채 선생에서 김동언 선생으로 이어진 설장구이다. 전남무형문화재 '우도농악' 보유자의 '김동언류 설장고'에 김오채 선생의 가락을 오승재의 장구로 재해석하여 연행한다.(김호석/쇠 이정현/북) 임성준 명인의 '고창농악 고깔소고춤' '고창농악 고깔소고춤'은 1800년대 후반 이모질에 의해 집대성되었으며, 이후 김양술, 강대륙,강대홍, 유만종, 박용하, 정창환 등에 의해 발전 전승되어 지금에 전해지고 있다. 덩더쿵, 굿거리, 반굿거리, 된굿거리의 장단을 바탕으로 소고놀음과 다양한 걸음이 어우러지는데 특히 굿거리의 맺이나 꾸리북맺이는 고창 고깔소고춤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볼거리이다.(이승주/쇠, 구경모/장구, 구자연/태평소) 성광우의 '김기복류 쇠놀음' '김기복류 쇠놀음'은 경기도무형문화재 '안성남사당풍물놀이' 예능보유자 故 김기복 선생의 쇠가락과 종이북상놀음으로 구성된 경기도 안성 특유의 웃다리 쇠놀음이다.(문철진/쇠, 김요한/징, 김효정/장구, 박대권/ 북, 이상철/ 태평소) 김병천 명인의 '진도북놀이' '진도북놀이'는 북을 어깨에 메고 허리에 고정한 후 양손에 채를 쥐고 장단과 춤을 추는 국내 유일한 양북춤이다. 1987년 전라남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류파별로 전승되고 있다. 오늘 작품은 장성천류 북놀이를 각색하여 개인놀이로 만들었으며, 가락이 다양하고 춤사위는 투박함과 세련미를 함께 한다.(김지원/쇠, 박미림/장구, 이수민/징) 이윤구 명인의 '채상북놀이' '채상북놀이'는 농악판에서 전승되어 오는 전통 북놀이 중에서 단연 최고의 백미로 손꼽히는 눈대목들을 시나위 감성으로 창안하여 무대화시킨 작품이다. 호남, 영남, 경기충청 가락을 한과 멋, 흥으로 집약하여 정교한 버슴새를 한눈에 엿볼 수 있다.(조성규/쇠, 유근/징, 인승현/장구, 지경태/북, 구자연/태평소) 서한우 명인의 '설장구춤' '호남우도농악'에서 유래하여 농악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장구잽이가 다채로운 가락과 춤사위를 통하여 예술성을 보여주는 놀이를 서한우 명인이 재구성하였다. 섬세한 가락과 연주, 발짓의 돋음새, 디딤새를 통한 참신한 호흡이 묻어나는 춤사위와 함께 어우러져 무악이 하나가 되는 것이 특징이다.(서광식/쇠, 임재태/장구, 구자연/태평소) 손영만 명인의 '김천금릉빗내농악 상쇠놀음'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승격된 김천금릉빗내농악의 특징을 잘 나타낸 상쇠놀음이다. 전국 대부분의 농악이 농사굿의 성격이 짙은 반면, 김천금릉빗내농악은 전쟁에서 유래된 진굿으로, 가락이 빠르고 격렬한 것이 특징이다.(류현수/장구, 우선빈/북) 대한민국농악연합회 전국 가입단체 경기도:광명농악보존회.김포농악보존회.이담농악보존회.양주농악보존회.안산고잔농악보존회.서한우버꾸춤보존회. 인천광역시: 강화열두가락농악보존회.인천검단보리밭일소리보존회.인천서곶들노래보존회.미추홀농악보존회.풍물패잔치마당 충청남도:대전웃다리농악보존회.공주농악보존회 충청북도:청주농악보존회 강원도:원주매지농악보존회.춘천농악보존회. 평창둔천평농악보존회 경상북도:김천빗내농악보존회.구미농악보존회.경산중방농악보존회.욱수농악보존회.천왕메기(비산농악)보존회 경상남도:함안화천농악보존회.김해농악보존회.함안농요보존회. 전라남도:진도소포걸군농악보존회.화순한천농악보존회.곡성중동농악보존회.우도농악보존회.담양민속보존회. 전라북도:이리농악보존회.정읍농악보존회.김제농악보존회.고창농악보존회.남원농악보존회 연락처는 대한민국농악연합회 경기도 광명시 철망산로42 광명문화원 농악사무실 (전화 02-899-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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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고창청보리밭축제 15일 개막20여만평의 광활한 대지에 태양 아래 초록 물결이 펼쳐진다. 전북 고창군은 오는 15일부터 5월 7일까지 ‘제20회 고창청보리밭축제’가 열린다고 10일 밝혔다. 전북 고창군은 올해를 ‘세계유산도시 고창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1000만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뛰고 있다.고창군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유산 프로그램 5개(고인돌, 갯벌, 농악, 판소리, 생물권보전지역)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유산인 고창농악과 판소리를 더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군은 농악 상설공연을 다음 달부터 성송면 농악전수관과 함께 고창읍 신재효판소리공원에서도 진행한다.심덕섭 고창군수는 11일 "올해는 자랑스러운 고창을 국내외에 알리고, 군민이 하나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세계유산도시에 오셔서 봄을 만끽하고 맛있는 음식도 드시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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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극축제 '노상놀이야' 고창, 부안, 익산, 남원, 전주 5곳 선정전북문화관광재단은 전북 거리극축제 '노상놀이야' 공연프로그램 공모에서 5개 시·군을 최종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이 사업은 도내 대표 관광지의 콘텐츠를 활용한 퍼레이드형 공연 프로그램으로 주말 낮 시간대에 상설운영하는 공연사업이다.지역 문화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14개 시·군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했다. 선정된 시·군은 ▲고창 (사)고창농악보존회 ▲부안 포스댄스컴퍼니 ▲익산 (사)국악예술원 소리뫼 ▲남원 협동조합 지리산권마실 ▲전주 사회적기업 합굿마을 문화생산자 협동조합 등 총 5곳이다.이들은 오는 5월부터 11월까지 전주 한옥마을, 남원 광한루 등 각 시·군의 대표 관광지에서 70회 이상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부안은 포스댄스컴퍼니 주체로 오는 4월부터 11월까지 부안 문화소재로 구성된 ‘환상 퍼레이드’가 부안군 축제장 일원에서 진행될 계획이다. 익산에서는 오는 6월부터 10월까지 (사)국악예술원 소리뫼 주체의 ‘백제무왕 납시오 행차퍼레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남원은 오는 5월부터 10월까지 협동조합 지리산권마실의 ‘조선에서 돌아온 황희정승!’을 공연할 계획이다. 전주는 사회적기업 합굿마을 문화생산자협동조합의 ‘한옥마을 전통연희 퍼레이드’가 오는 5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다. 공연은 동학 전주성 입성의 흥겨운 모습을 전통 퍼레이드 형식과 소규모 거접 마당놀이로 표현하고, 전북무형문화재(제63호 전주기접놀이), 구전으로 전승하는 민속연희들로 구성된다. 전북문화관광재단 이경윤 대표이사는 "노상놀이야 사업이 지역 문화관광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며 "또한 2023 전북 아시아 태평양 마스터스대회, 새만금 세계잼버리 등 전라북도 메가이벤트와 노상놀이야 사업이 연계해 진행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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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무형문화유산 '이담농악'의 재현과 특성본지 8월 13일자 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의 기고문 "동두천 이담농악, 경기북부에서 '국악의 메카'로 도약" 이라는 주제의 지면이 나간 후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담농악'은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경기 북부지방의 양주시 문화권에 본류를 둔 농악으로, 이담풍물놀이보존회가 관리하고 있다. 경기도 향토 지적 재산으로 선정되었다. '이담'은 1963년까지 양주에 속해 있는 동두천의 옛 고을 이름이다. 양주지역은 예부터 수많은 뜬쇄들이 배출된 농악의 고장이었으며 마을마다 농악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1945년 8·15광복 전후에 양주지역에서 개최한 각종 농악경진대회에서 이담농악은 많은 상을 차지하였다. 1960년대까지는 이담농악에 속하는 송내농악·안흥농악·광암농악·행단농악·하봉암농악 등이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송내농악의 상쇠잡이 조임득, 행단농악의 이창인 등이 이담농악을 이끌었다. 근래에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회가 구성되었다. 1997년 문화원에서 ‘우리소리 한마당’이라는 제명으로 이담농악이 재현되었다. 2년후 1999년 경기도 민속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동두천 지역민의 응원에 2007년에는 '동두천시립이담풍물단'이 창단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지 8년 후, 2017년 이담농악이 문화재 등록이 되고, 보유자가 지정된다. 김경수 단장은 전승이 희박해져 가는 동두천 '이담농악'을 재현하기 위해 힘쓴 공로와 타고난 예능을 인정받아서 동두천 무형문화재 3호 '이담농악' 보유자가 된다. 그런데 필자는 왜 타지에서 온 김경수 단장이 보유자가 되었을까라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정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동두천 '이담농악'이 무형문화유산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어본다. 김단장의 이력을 살펴보니 일찌기 '국악영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40여 년 동안 올곧이 '농악'에 몸 담고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1982년 '농악의 육군사관학교'라고 불리는 한국민속촌농악단의 입단제의를 받아 그곳에서부터 전승활동을 시작하면서 현재 한국 농악의 맥과 계보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김단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로 출발하여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 (사)대한명인회 선정 사물놀이 '채상설장구' 명인,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사)한국국악협회 경기도 지회 이사, (사)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동두천지회 부지회장 등을 맡으면서 동두천 국악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악교육'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 농악보존회를 조사하기 위해 매주 현지 답사를 수행하고 있다. 한달 간 인터뷰를 통해서 일제강점기는 물론 1945년 해방 전후 전국 각 지역 고을마다 마을마다 존재했던 전국 농악보존회 단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담농악의 시원과 역사성 Q. 안녕하세요. 지난 달 본지에 실린 김경수 단장님 기고문을 통해서 '농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전해집니다. 이 기고문을 읽은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동두천 지역 농악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A. 때는 1994년, 지인을 통해서 동두천 지역 학교에서 풍물반 지도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이 예전에는 양주 지역이어서 양주농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히 수락을 하고 온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왔습니다. 동두천여자상업고등학교 풍물반 지도를 하면서, 동두천 지역 농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지역 농악의 존재와 전승상황은 어떤지요 A. 당시만해도 동두천 지역은 북한계를 따라서 흐르는 내천과 농사짓는 땅이 풍부한 지역이라서, 논두렁 밭두렁 지나가면 농부님들이 흥얼거리면서 '논매기소리' 같은 민요가 생생히 살아있는 고장이었습니다. 즉, 수량이 풍부한 내천을 끼고 사는 고을이라서 집약적 농사를 짓는 마을이 많고 당연히 마을마다 농악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왕지사 동두천에 사는지라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농사를 짓는 마을을 중심으로 '농악'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여상 고적대는 전국에서 꽤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지도하시는 풍물반은 어땠나요. A. 당시 동두천여상의 고적대와 풍물반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수이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 이담농악의 존재에 대해서 언제 알게 되어서 조사를 시작하셨나요? A.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풍물반 학생들이 동네 어르신에게서 지역 마을공동체가 주관하는 놀이(풍물)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동두천여상 풍물 담당 김흥래 선생님의 자문과 천재원 동장님의 고증에 따라 동두천 지역 농악의 발자취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Q. 인생 최고 청년기에 동두천에 와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시는 것 같아요. A. 제가 동두천여상 풍물반을 지도하러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담농악을 만났고... 1999년 경기도 민속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동두천 이담농악이 국악계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 계기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바로 이담농악이 오늘의 저의 존재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Q. '이담농악'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듣고 싶습니다. A. 동두천의 옛고을 지명이 이담입니다. 마을조사에서 농악의 존재와 꼭두쇠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구심점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1995년 '이담농악동호회'도 창립되자마자, 저는 문서와 흔적을 찾기 시작했죠. 당시 발족회 주축 인물은 송내농악을 이끌었던 상쇠 조임득, 이창인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이끌어주셨습니다. 동두천 지역 농악을 양주에서 최고의 민속놀이로 끌어올린 연희자들이셨습니다. Q.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A. 이담농악은 1980년대에 들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부터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단체가 구성되었죠. 이때 30살을 갓 넘긴 어린 저에게 시작을 함께 한다는 명분을 주셨습니다. Q. 마을조사와 학계의 고증을 통해 이담농악의 재현작업이 시작되어 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역활과 성과가 궁금합니다. A. 재현 과정은 이론과 연희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죠. 저는 행단농악에서 활동하던 어윤희(지행동), 송내농악의 장병우(송내동)등의 고증에 따라 행단농악과 송내농악을 재정리하여 앞놀음과 뒷놀음을 구성하고, 전해지는 광복가락과 법고놀이를 체득하고 전래되어 오는 '농사풀이' 소리를 재현하여 이담농악의 몸집을 만들어 만들어 갔습니다. Q. 조사과정에서 특별하게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시나요? A. 故 장병우 선생님이십니다. 이담농악의 전신인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이십니다. 2016년 10월 12일 선생님을 찾아가서 소고놀이를 통해서 농사풀이 과정을 고증 받아서 정리를 했습니다. 전 과장의 재현과 무대화를 위해 각별한 지도를 받았습니다. Q. 당시 일정 기간 단절된 이담농악의 재현을 위해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A.동두천 출신 지역 사람이 아닌 타지인이 지역 농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저를 처음엔 그 누구도 탐탁치 않게 바라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조사와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일이지요. 제가 묵묵히 흔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며...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시간나는 대로 지속적으로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우선 마을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당목 은행나무 밑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하고 기원을 드렸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의 진심이 통했던지... 사람들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되면서 지난 마을의 역사와 함께 마을굿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Q. 긴 세월 동안 힘든 고증과정을 거쳐서 언제 이담농악이 세상(동두천시)에 나왔나요? 즉 언제 어느 무대에서 첫 '재현'(Repretation)을 하셨나요? A. 드디어 10여 년에 걸친 고증작업 끝에 2017년 12월 12일 오후 6시30분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립 이담농악단 첫번째 정기공연, 즉 무대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우린 모두 이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에 모두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Q. 그 마을이 바로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마을인가요? A. 네, 사당골(현 이담로 161) 마을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마을굿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굿을 지켜내려고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마을굿이 있는 곳에는 농악대가 존재합니다. Q. 사당골 마을제는 언제, 어디서부터 출발을 하나요? 특정 장소가 있나요. A. 마을 입구에 마을 수호신 당목이 우뚝 서 있습니다. 특히 이를 알리는 사당골 수호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매년 마을 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마을제를 지냅니다. 행단제라고 합니다. 1,000년이나 된 당목 은행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액운을 떨쳐내고 화합과 단합을 기원하는 고유제와 같은 제사의식과 줄다리기 및 씨름대회가 끝나고 뒤풀이 형식으로 구성된 놀이로 시작됩니다. Q.그렇다면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사당골에서 이루어지는 마을굿 행단제에서는 섬기는 대상이 있나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을 상징하는 설화나 전해오는 민담이 있지 않을까요? A.사당골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당목과 함께 어유소 장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Q. 흥미롭습니다. 사당골을 지키는 은행나무가 기적이나 예시를 보여준 전설이 있나요. A. 조선 초기 어유소 장군이 어린시절부터 이 은행나무 밑에 단을 쌓고 학문과 무예를 익혔으며 은행나무와 대화를 주고받듯 은행나무를 모시면서 가까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한달 동안 은행나무가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또 조선 말기 고종 인산일 바로 직전에는 날씨가 맑고 화창한데 갑자기 마른 벼락이 치면서 한양 방면을 향해 자라고 있던 큰 가지가 저절로 꺾여 부러졌다고 합니다. 이후부터 어유소 장군과 은행나무을 기리는 ‘행단제’라는 마을굿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Q. 사당골 마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1150년대에는 온양 방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였으며 고려 의종시 상서령 벼슬을 한 방휘진이 1177년에 이 마을에 묻히고 이후에 사당이 건립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1420년에는 평해 황씨, 1430년에는 충주 어씨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사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사당골이라고 불려졌다고 합니다. 사당은 양지마을에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는 사당골을 행단부락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1963년부터는 양주군 동두천읍 지행 2리였으며, 1981년 7월 1일부터 동두천시 내행동 5통이고, 현재는 불현동 23통으로 46세대 외에 아파트 단지가 구성되었고, 이후 마을회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Q. 사당골 마을회 구성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고문에는 박양희, 회장에는 황석만,부회장은 이경훈,총무는 이창수,감사는 박현희, 운영위원으로 박은희, 박찬희, 박정호, 송요섭, 이상재, 이명애이십니다. 언제든지 가면 황석만 회장님이 반겨주십니다. 이담농악보존회 후원회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마을제를 지내도 앞장서서 주축이 되는 마을 유지분들입니다. 그런데 자꾸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가는 추세입니다. 아! 마을이 살아야 나라도 삽니다. Q. 지금도 사당골에는 마을제를 지내나요. A. 인터뷰 당일날에도 우연치 않게 은행나무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박은희 어르신께서 은행나무 주변에 제초기로 잡초를 제거하고 계신 것을 보고 다행이도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구가 줄어서 매년 음력 10월1일에 마을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삼색 과일과 술을 올리며 간소하게 마을제를 지낸다고 박은희 어르신께 인터뷰를 통해서 전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어 활동이 번창하였으나 지금은 어르신들의 연세가 고령화되면서 박은희 운영위원님 외 몇몇 어르신들만이 관심을 가지시는 실정이라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주변 마을에서 농악이 성행했는 마을은? A. 이담농악의 전신인 행단농악(지행동), 송내농악(송내동), 안흥농악(동안동) 등이 조선후기부터 연행되었으며, 주변 지역 송내농악과 안흥농악 등 농악들이 다수 존재했습니다. 특히 행단농악의 지행동, 송내농악의 송내동, 안흥농악의 동안동, 이 3개의 지역에서도 마을굿과 농악대 활동이 가장 성행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도 마을굿이 내려오고 있었죠. 그러나 산업화가 급속히 발전하고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농사보다는 보산동 상가와 주변 골목들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문화가 조성되어 전국에서 외지 사람들이 불나비처럼 모여들었죠. 최근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동두천역 근처 상권이 발달하면서 점점 전통 민속문화같은 농악이 자취를 감추고 명맥 마저 희미해져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Q. 마을조사를 하시면서 이담농악 재현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은 누구신가요 A. 송내동에 사시는 장병우라는 분이십니다. 소고잽이이십니다. Q. 송내농악의 소고잽이셨던 故 장병우 선생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사당골 마을회 운영위원이신 박은희 어르신에 의하면, 송내동에 장병우라는 소고잽이가 있었고, 송내농악이 행단제를 지내고 나면 넓는 공터에서 난장을 틀고 농악놀이 등 다양한 풍장놀이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고 합니다. 그 중에 장병우 소고잽이가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계셨는데 안타깝게 금년 6월 18일에 소천하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12월 12일(토) 2시에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주관으로 무형문화재 연합회 공연에서 이담농악단원들과 장병우 선생님께 ’소고놀이‘ 농사풀이를 지도받고 선생님과 저와 단원들이 함께 공연을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Q. 저도 작년에 이광수 선생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12일 참석했습니다. 장병우 어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서 풍물을 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 분의 유품 중 상모같은 거라도 보존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혹 남겨주신 거라도 있나요. A. 네, 다행히 상모와 의상을 저에게 주시고 가셨습니다. 몇 장의 사진이 남겨있습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곤합니다. 가신지 얼마 안되어선지 실감이 안납니다. 생각만 하면 그리워집니다. Q. 이담농악보존회는 언제 창단이 되었나요? A. 1990년 초반 이담농악을 연구하며 1995년에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단체가 구성되어 이담농악보존회를 창단하였습니다. 이담농악의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서 성신여대 지회와 을지로 지회 및 구미 지회, 동두천 관내에도 상패동, 송내동,걸산마을, 동두천시 평생학습관. 동두천문화원에서 이담농악 강좌, 등..... 활성화를 위해서 회원님들을 모시고 있으며 이담농악후원회 이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동두천 시민들에게 이담농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이담농악 각 과장의 구성은? A. 이담농악을 이끌어 가면서 재구성한 것은 광복가락을 입장과 퇴장할 때 치고있습니다. 고깔소고 농사풀이 과정을 故 장병우 선생님과 작년에 함께 공연하면서 보완하였습니다. 1)길놀이(광복가락) ⟶ 2)인사굿 ⟶ 3)원진 ⟶ 4) 벅구마당놀이 ⟶ 5)당산벌림 ⟶ 6) 멍석말이 ⟶ 7) 원진 ⟶ 8) 벅구놀이 ⟶ 9) 한줄벅구 ⟶ 10) 두줄벅구 ⟶ 11) 벅구 농사풀이(가래질,논가는 동작, 모판대기, 씨앗 뿌리기, 써래질, 모 짜고 심는동작, 애눈파기, 두벌논메기, 퇴비주기, 벼베기, 타작)로 전과장이 11과장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동작과 춤사위도 보여 주어야 하니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Q. 당시 문화재 지정 신청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A. 2016년에 시 문화재 신청서를 넣을 당시에는 절차와 방식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막했습니다. 장구잽이로 학교에 출강하면서 현장에서 활동하던 실연자이라서 행정적인 문서화 작업이 저에게는 엄청 부담이 많았고 벅찼습니다. 그러나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지인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서 신청서류를 제출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을정도로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담농악'의 광복장단과 태극상모.그리고 제금 편성 Q. 이담농악만이 갖고 있는 지역성을 상징하는 특징이 있나요? A. 하나는 '광복장단'이고 다른 하나는 태극 문양이 들어간 '태극상모'입니다. ‘광복장단’은 이담농악에서만 쓰이는 가장 특색 있는 장단으로써 1945년 광복 전후 동두천 지역에서 길놀이를 할 때에 쓰이던 장단입니다. 말 그대로 ‘광복’ 이라는 의미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해방을 표현하는 장단이라고 봅니다. 외세에 의한 억압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흥을 더하고 신명을 표출할 때 쓰이던 장단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지금까지 큰 경사스러운 날에는 반드시 ‘광복장단’을 썼고 이것이 전통이 되어 이담농악 판제에 가장 특색 있는 장단이 되었습니다. 더한다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불교적 성향이 보입니다. 불교식 제례에서 스님들의 춤사위인 바라춤에서 쓰는 '바라'(제금)를 사용하여 편성이 이루어집니다. Q.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이 타 지역과 대비해서 이담만의 것인가요. 그렇다면 동두천 지역 농악대에서만 전해진다는 '광복가락'에 대해 궁금합니다. A. 동두천 송내동, 지행동, 동안동, 등 여러 지역에서 치던 가락입니다. 일제강점기 1940년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군가로 불린 광복군아리랑이 떠 오릅니다. 농민들이 광복을 기원하면서 '광복+농악'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광복후에 광복군아리랑을 만들리가 없거든요. 이 용어의 발생을 1940년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재금을 치배로 구성하여 함께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담농악의 판제가 완성됩니다. Q. 다른 지역 가락의 용어는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A. 삼채장단, 덩덕쿵이, 자진모리장단 등등 다양합니다. Q. 광복가락을 듣고 싶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다른 지역과 현저하게 다릅니다. ‘광복가락’의 기본 장단은 쇠가락 구음으로 ‘갱 무개갱 갱 무개갱 갱 갱 갱 무개갱’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장단은 '덩덕궁' 장단이라 볼 수 있죠. 광복장단은 긴 삼채굿 혹은 자진삼채굿과 비슷하나, 다른 점은 긴 삼채굿, 자진삼채굿의 경우에는 기본형과 반주형을 교대로 치지만 덩덕궁이의 경우에는 기본형에 구애됨이 없이 다채롭게 변주하여 리듬이 매우 생동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광복장단’ 역시 길놀이 때의 걸음걸이에 따라 장단의 속도와 장단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Q. 이담농악대가 쓰는 태극상모도 독특합니다. 연유가 있나요. A. 이담은 다른 농악대와는 달리 농기(만장기, 깃발)위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상모에도 태극문양을 그려넣습니다. 예전에 동두천에는 태극기와 태극문양이 아주 흔했습니다. ’동두천‘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남과 북이 갈리는 최전방 길로 통하는 교통의 도시 동두천, 전통과 달러가 공생하는 동두천(당시 세간에서 지나가는 개도 파란 달러를 입에 물고 다닌다고 했죠.)....거리에는 주한 미군 제7사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군들이 많았죠. 미군들을 상대하는 크럽이나 레스토랑 건물 입구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흔하게 보입니다. 미군들이 주로 외출복으로 걸치는 카키색 항공점퍼나 모자에는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수 놓아서 입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죠. 점퍼 뒤에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수놓아서 입을 정도입니다. 당시 중고등 학생들도 그런 미군들이 입던 군복을 구입해서 멋스럽게 걸치는 미리터리룩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도 농기에 태극기를 그려 넣게 되고, 태극상모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동두천 이담농악만이 태극 문양이 그려진 태극상모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담농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동두천, 광복장단, 태극상모를 연결해보니 동두천 백년사 중 민중사 일부가 고스란히 '이담농악'으로 직결된다. 일제강점기 외세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광복장단(1940년초), 1950년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 7사단이 주둔한 동두천은 외부 집단으로부터 정체성을 찾고자 해서 나온 태극문양(1960년 이후)은 지역성을 구현시키고자 나온 태극상모(2017년)로 연결된다. 김단장은 아직까지 타 지역에서 태극상모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전통문화의 시대성이 발현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제금을 쓰는 모습에서 불교적 성향이 엿보인다. 이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을 통해서 동두천 역사의 일부분을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Q. 이담농악보존회 농악단 자랑을 하신다면? A.동두천 이담농악의 자랑은 모두가 한 가족 같은 마음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라고 자부합니다. 전공자나 동호인분들이 구분없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협동하고 단결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역 유지이신 차유철 보존회장님을 중심으로 이담농악 후원 이사회가 구성되어서, 정신적으로 든든합니다. 동두천 관내에서 저명한 훌륭한 분들로서, 우리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시대에 앞서가는 '농악의 컨텐츠' 개발 연구 절실하다" Q. 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으로서 동두천 시민들에게 ’국악‘과 '이담농악'을 어떻게 알리고 싶으십니까? A. 첫째, 가까운 의정부에는 회룡문화제가 있다. 공주의 백제문화제 등..... 동두천예술제를 더 키워서, 전통을 복원하고 'K-국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이 실린 ’이담문화제‘가 개최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져서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국악‘을 알려야 합니다. 특히 동두천은 일찌기 숭늉보다도 커피를 더 좋아하고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낯선 국악을 감상하기 위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죠. 둘째, 세계적 한류 바람을 타고 한류의 근간을 전통 민속문화에 두고 있습니다. ’K-국악‘이나 ’K-뮤직’ 시대에 맞는 창작활동을 통해 외부에 동두천의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요청하는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셋째, 동두천시가 주최하고 국악협회가 주관하는 ‘동두천 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를 타악 부문, 민요 부문, 연희 부문 이렇게 3개 부문 학생부와 일반부, 명인부로 나누어서 개최를 하여 경기북부를 시작으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국악대제전을 통해 동두천을 알리고 싶습니다. Q. 해외 공연은 언제부터 나가셨나요? 다녀 오신 나라는?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A. 1987년 남사당 사물놀이 예맥 활동을 시작으로 김덕수 명인 밑에서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 호주 등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동포사회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인도. 말레이 시아. 폴란드. 파라과이. 베네쥬엘라.멕시코. 보스니아. 칠레. 홍콩. 이라크 등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 민족음악을 알리는 기회가 주어졌죠. 문화와 문화가 만나면 다양한 컨텐츠가 열립니다. 그것은 현장에서만 느낄수 있습니다. 많은 영감을 얻고 왔습니다. 특히 말은 안통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동포사회 청소년들이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특히 동포들과 휘날레를 할때는 모두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우리 공연에 대해서 아리랑으로 답해주는...그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동포들에게 농악을 전수해주고 싶습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 '농악' 을 주제로 한 전국 단위 행사는? A. 2018년 10월 전국 50여 개 지역 농악보존회가 총집합해서 난장을 틀고 광화문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조직위원장:윤영달) 판놀이길놀이(거리퍼레이드)를 할 때입니다.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농악대들이 하늘 높이 만장기를 들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난장을 틀때는 신명이 올라서 하늘로 용솓음쳤습니다. 전국 농악대를 이끄는 리더를 맡은 임웅수(경기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회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날에 형제들(?)과 주고 받은 에너지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그 행사를 열어주신 해태크라운제과 윤영달 회장님의 국악에 대한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전 고인이 되신 주재연 예술감독님의 열정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악대 길놀이야말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컨텐츠라고 봅니다. 동두천예술제에도 시도하고 싶습니다. 길놀이는 길닦이를 통해 정화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필자는 제1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부터 학술자문위원 소속 단체라서 매년 3일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농악대가 보여준 거리퍼레이드는 장관이었다. Q. 20여년 동안 동두천에서 이담농악단을 맡으시면서 제자 중 특별한 제자가 있는지요. A. 파란눈의 이담농악 전수자,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Basile Peuvion)입니다. 우리가 2015년 9월 프랑스 낭트페스티발에 초청 공연을 받고서,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사물놀이 교습을 열었는데, 그때 농악을 공부하러 온 재즈 드러머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음악교사로 활동하는데 2018년 여름 휴가를 받고 한국에 와서 수소문 끝에 저를 찾아서 동두천까지 와서 우리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한달 동안 농악을 배우고 돌아갔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담농악단 하계, 동계 수련회 및 김경수 장구 두드림캠프에서 농악을 전수한 이래로, 해마다 2회에 걸쳐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동·하계수련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농악과 재즈가 협연하는 실험적 무대도 만들었죠.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가 섞이니까 상대는 물론 우리 농악도 빛을 발하더군요. Q. 외국에서 동두천까지 농악을 배우러 온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 소개해주세요. A. 재즈음악가인 그는 12세때 재즈드러머로 입문. 2012년 여수 국제 엑스포에서 공연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 음악을 발견하게 됩니다. 판소리와 민요, 그리고 사물놀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에 장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추최한 ‘K-Vox voix coréenne 2015’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할만큼 신명과 끼가 있는 친구입니다. 프랑스주문화원에서 이담농악을 배운후, 칠곡 세계사물놀이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국악 타악곡 웃다리를 드럼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비나리, 진도아리랑, 사랑가를 연곡으로 부르고, 장구 솔로 연주를 선보였죠. 외국인 부문에서 2위로 입상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과 재즈음악을 배합한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이어나갔습니다. 국내 국악대전에서 외국인 부문 최우수 수상하는가 하면, 자라섬 재즈패스티벌 참여하여 농악을 가미한 재즈 드럼 공연 등을 펼치는 등 활발한 국악 전도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에 빠져서 이광수 명인을 찾아가서 '비나리'도 배워서 무대에서도 불렀습니다. 휘날레에서는 늘 아리랑도 잘부릅니다. 현재 프랑스,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 이담농악 및 한국 음악을 알리며 '국악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동두천 명예시민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제자입니다. 벌써 보고 싶어지네요. Q. 단장님이 연구하시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A. 저는 지금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 6학기 논문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장은주 교수님의 논문지도하에 "대한민국 농악 용어 연구”란 제목으로 열심히 인터뷰를 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용어 속에서 예인들의 생각과 시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전국에 있는 농악인들을 찾아가서, 국가문화재, 광역시문화재, 도문화재로 분류하여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국 지역 농악에 대한 데이터가 국가기록 빅데이터 자료가 되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특히 아직 저에게는 벅찬 서양예술사, 예술기획과 행정. 한국예술사, ’예술과 사회‘같은 학문이 농악을 다각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3년이나 된 코로나라는 비대면 시기에 주어진 시간을 다행히 공부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Q.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 예능보유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이 민족유산 '농악'을 물려주기 위해 지향해야 할 과제는? A.농악은 마을굿에서 출발한만큼 지역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민족유산입니다.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2009년 동북삼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중국식 표현)이 향유하고 있는 농악을 ’농악무‘라는 종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습니다. 우리는 2014년에,,,안타까운 일이죠. 첫째, 180개국에 살고 있는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농악의 세계화‘를 펼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실험적 무대가 필요합니다. 일찌기 김덕수 선생님을 따라서 국외 공연을 많이 다녀왔습니다. 국내 무대와 국외 무대는 다릅니다. 청중의 시선에 맞추어야 합니다. 당시는 공연에만 집중하는지라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공연 무대에서 연희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예술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국외에서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농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러한 기회가 확장될 수 있도록 문화와 문화를 연결을 시켜주는 문화매개자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사물놀이'(김덕수 명인)와 '판소리'(안숙선 명인)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고 주재연이라는 문화기획자에 의해 'K-국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둘째,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작업입니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풍류대장, K-팦 등과 같은 대중문화가 넘쳐나면서 국악을 전공했던 세대들의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방탄소년단과 같은 아이돌 그룹의 경제적인 가치와 시너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악도 이런 특별한 목적을 가진 무대가 생긴다면 무한한 컨텐츠가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셋째,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농악이 '지속가능성' 있는 종목으로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계승발전이 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전승환경 개선과 행정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농악은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야만 하는 지속가능성 있는 민족유산입니다. 다음세대에도 계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이라고 봅니다. 저의 연구는 이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악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 구술작업을 통해 이담농악의 특성을 찾게 되었다. 광복장단과 태극상모, 그리고 '제금' 편성이다. 더 늦기 전에 마을조사를 통해서 광복장단에 대한 민속학 및 음악적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아리랑연구자로서 광복가락을 듣고서 '광복군아리랑'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940년을 전후해서 '광복'이라고 명명했던 가락을 오늘날까지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을에서만 치던 장단이 아니고 양주농악을 계승해 온 이담농악 권역에서 많은 마을이 전승해 오고 있다. 시대성을 도입한 민중예술의 전승주체들이야말로 '창조적 계승'의 실체인 것이다. 태극상모의 출현과 이를 계승하는 이담농악은 자발적으로 지역성을 구현하려는 주체들의 성과라고 본다. 대내적으로는 미군 제7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동두천과 태극기를 연결시켜볼 수 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무형문화유산 종목 중 지역명(지역+종목+보존회)을 달고 있는 전국단위 민속예술 종목 중 하나가 '농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그만큼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마을 사람들도 함께 참가할 수 있는 '대동놀이' 종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광화문 무대에서 전국 단위로 집합할 수 있었던 종목이 농악(2018년)과 아리랑(2019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지속가능성' 종목 중에서 아리랑, 농악이 2012년 2014년에 각각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이때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부분이 바로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기능을 가진 종목'이라는 것이다. 즉 대동성에 주목한 것이다. 이담농악보존회는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3호 전승단체로써 위상을 확립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보존회 회원들과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목표로 원형을 복원하고 재현하여 이담농악을 후손들에게 계승하고자 힘쓰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보호조례를 보면, "제53조의5(도무형문화재의 보호 및 육성)의 제1항에 도지사 및 시장·군수는 지정된 도 무형문화재의 전승·보전을 위해 전수교육비·장학금 등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전승자들은 경제적 문제와 열악한 전승 환경에 내몰린 채 힘겹게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일수록 명맥 잇기를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무형문화 전승자들의 실상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가 9월 9일부터 9월 12일까지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전통연희축제 첫날은 김덕수 명인이 ‘신동 김덕수의 초연’ 둘째 날에는 연희풍류’, 고창농악보존회의 ‘고창농악 판굿’, 삼도농악’이 이어진다. 셋째 날에는 줄타기 공연인 ‘동두천 이담농악X여류줄꾼 서주향’ 공연이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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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전국대학생마당놀이축제 성료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경훈)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이주관하는 '제25회 전국대학생마당놀이축제'가 지난 24일 국립무형유산원얼쑤마루 대공연장(전북 전주시)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되는 경연대회임에도 불구하고 경성대, 동덕여대, 동서대, 상명대, 서울예대, 성공회대, 성신여대, 이화여대, 중앙대, 홍익대 등 전국 11개 대학교 동아리에서 총 260 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해 농악과 탈춤놀이 부문으로 나뉘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냈다. 대학생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경연을 펼친 끝에, 가장 우수한 실력을 선보인 팀에게 수여되는 ▲대상에는 농악 부문(교육부장관상) 성공회대학교‘민속문화연구회 탈’팀, 탈춤놀이 부문(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동서대학교‘시우터’팀이, ▲금상(문화재청장상)에는 홍익대학교‘풍물패 협의회’팀(농악 부문), 서울예술대학교 ‘예대민속연구회’팀(탈춤놀이 부문)이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우리의 무형유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높이고 우수한 전통예술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개최한 이번 행사는 전국 대학생들이 그동안 쌓아온 실력과 흥을 마음껏 발산하고 서로 교류하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올해로 어느덧 25회를맞이한 전국대학생마당놀이축제는 앞으로도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대학생 마당놀이 경연대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시상부문 참가 부문 단체명 학교명 참가 종목 시 상 내 역 상장명 상금(원) 대상(2팀) 농악 민속문화연구회 탈 성공회대학교 고창농악 교육부장관상 3,000,000 탈춤· 놀이 시우터 동서대학교 수영야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금상(2팀) 농악 풍물패 협의회 홍익대학교 고창농악 문화재청장상 2,000,000 탈춤· 놀이 예대민속연구회 서울예술대학교 봉산탈춤 은상(2팀) 농악 소래얼 중앙대학교 남원농악 국립무형유산원장상 1,500,000 탈춤· 놀이 해태 중앙대학교 북청사자놀음 국립국악원장상 동상(4팀) 농악 한소리 동덕여자대학교 고창농악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상 1,000,000 어우리 이화여자대학교 고창농악 탈춤· 놀이 휘몰이 성신여자대학교 고성오광대 노릇바치 경성대학교 동래야류 휘모리상(1팀) 탈춤·놀이 소리사위 상명대학교 봉산탈춤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상 500,000 얼씨구상(2팀) - 한소리 동덕여자대학교 고창농악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상 500,000 - 노릇바치 경성대학교 동래야류 으뜸상 개인 김유민 동서대학교 수영야류 국립무형유산원장상 명품장구 지도자상 개인 고창농악보존회 국립무형유산원장상 명품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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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 온라인 개최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사장 김삼진)이 주최·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이하 전통연희축제)가 9월 9일(금)부터 9월 12일(월)까지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전통연희의 생활화와 대중화를 도모하는 전통연희축제는 매년 2만여 명이 찾는 대규모 야외축제로 2007년부터 개최됐다. 올해는 7월 6일부터 7월 10일까지 국립국악원 일원에서 대면 축제를 진행하고, 추석 연휴 기간인 9월 9일부터 9월 12일까지는 온라인 축제를 열어 예술인들의 열정 가득한 무대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전통연희축제 첫날은 김덕수 명인이 그동안 쌓아온 60년의 경지를 다시금 초연하는 마음으로 선보이는 ‘신동 김덕수의 초연’과 무속음악 남성 악사 변진섭, 박범태, 김태영, 김운석 4인의 무대인 굿판의 마에스트로 ‘화랭이전’, 사물놀이와 재즈의 결합을 선보이는 뜬쇠예술단과 타악 연주가 박재천의 ‘사물놀이 변주곡’으로 축제의 막을 올린다.둘째 날에는 화제의 프로그램 JTBC ‘풍류대장’에서 파이널 진출 6팀에 오르며 대중들의 이목을 끈 풍물밴드 이상의 ‘연희풍류’, 호남우도 농악의 화려한 기량을 선보이는 고창농악보존회의 ‘고창농악 판굿’, 지역별 농악의 특색을 재해석한 한누리연희단의 ‘일상을 위한 신명 삼도농악’이 이어진다. 셋째 날에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공연인 ‘동두천 이담농악X여류줄꾼 서주향’과 EDM 사운드와 전통 음악으로 도시 국악을 형상화한 김주홍과 노름마치의 ‘허튼소리’, 각 지역의 특색있는 탈춤들을 만나볼 수 있는 천하제일 탈공작소의 ‘골골샅샅탈탈’ 공연이 준비됐다.마지막 날에는 경기도 화성 지역의 전통 두레소리를 선보이는 화성두레농악보존회의 ‘공동체놀이 고잔두레’와 연희그룹 연화의 창작연희 콘서트 ‘청월에 놀다’, 트로트 가수로 활발히 활동 중인 신승태와 유희스카가 만나 신바람을 일으킨 ‘니나노 콘서트’로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김삼진 이사장은 "7월 폭염 가운데에도 많은 분들이 현장 공연에 찾아오셔서 전통연희축제를 즐겨주셨다”며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 친지들과 가정에서 다채롭게 성장하는 우리 전통연희를 맘껏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전통연희축제는 9월 9일(금)부터 9월 12일(월)까지 오후 2시에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돼 관람할 수 있다. 축제 관련 상세 정보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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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자의 뛸판, 관객을 위한 놀판,’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가 7월 6일(수)부터 7월 10일(일)까지 국립국악원 일원에서 개최된다.전통연희의 생활화와 대중화를 도모하는 전통연희축제는 매년 2만여 명이 찾는 대규모 야외축제로 2007년부터 개최됐다. 엔데믹 전환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대를 즐길 수 있도록 올해는 7월 6일부터 7월 10일까지 대면 축제를, 9월 9일부터 9월 12일까지는 온라인 축제를 열어 예술인들의 열정 가득한 무대를 즐길 수 있다.개막작은 김덕수 명인이 그동안 쌓아온 60년의 경지를 다시금 초연하는 마음으로 선보이는 ‘신동 김덕수의 초연’으로 축제의 막을 올린다. 둘째 날에는 무속음악 남성 악사 변진섭, 박범태, 김태영, 김운석 4인의 무대인 ‘굿판의 마에스트로 화랭이전’으로 전국의 무속음악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사물놀이와 재즈의 결합을 선보일 뜬쇠예술단과 타악 연주가 박재천의 무대, EDM 사운드와 전통 음악으로 도시 국악을 형상화한 ‘김주홍과 노름마치’ 공연을 통해 전통연희의 현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화제의 프로그램 JTBC 풍류대장에서 파이널 진출 6팀에 오르며 대중들의 이목을 끈 ‘풍물밴드 이상’, 자메이카 장단 ‘스카’와 우리나라 ‘휘모리 장단’의 흥겨움을 느끼게 해줄 ‘유희스카’의 공연을 통해 MZ세대도 힙한 국악을 즐길 수 있다.이 밖에도 고창농악보존회, 화성두레농악보존회,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 등 지역별 농악 시연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여성 줄꾼 서주향의 줄타기까지 더해져 전통 농악부터 무속음악, 줄타기, 탈춤까지 전통연희의 모든 것을 축제에서 즐길 수 있다.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김삼진 이사장은 "일상회복의 시기에 예술가들과 대중 모두 활력을 얻는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뿌리 깊은 전통을 지키며 다채롭게 성장하는 전통연희를 즐기는 시간 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전통연희축제 현장 공연은 전석 무료로, 축제 관련 상세정보 확인과 사전 예매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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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과 농악,태권도가 만나다우석대학교 태권도학과 시범단이 민초들의 삶을 그린 태권 소리극 '태권유랑단 녹두'가 관객들을 만난다.2일 우석대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전북 도내 문예회관들이 지역 간 균형 있는 문화발전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문화예술의 가치를 다시 한번 제고하자는 취지로 시도한 교류 사업의 하나로 제작됐다.공연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태권도의 각종 품새와 겨루기, 고난도 격파에 칼군무까지 흥미로운 볼거리로 구성돼 있다.퓨전국악실내악단 '소리愛'와 고창농악보존회, 하이댄스퍼포먼스 등이 참여한 가운데 태권도와 국악, 농악의 신명이 더해져 관객과의 교감과 소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고창문화의전당, 부안예술회관이 공동 제작한 공연은 오는 6일 오후 2시·6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공연을 시작으로 고창문화의전당 18일 오후 4시· 7시 30분, 부안예술회관 27일 오후 2시·6시에 펼쳐진다.이와 관련 이 공연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한 '문예회관·예술 단체 공연 콘텐츠 공동 제작·배급 프로그램'에 선정된 바 있다. 남천현 총장은 "우리 대학교 태권도학과는 수백 차례의 국내 공연을 통해 태권극에 대한 작품성을 인정받아왔으며, 해외 공연을 통해 국가 위상 제고와 함께 태권 한류 붐을 일으키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명품 학과"라며 "앞으로도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관련 산업을 이끌어갈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서현석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전북의 특화된 소재와 예술 단체가 보유한 우수한 역량을 가지고 창작한 새로운 태권 소리극인 '태권유랑단, 녹두'는 지역 문예회관들과의 공동사업인 만큼 전북 문화예술의 중심축으로써 공공성 역할을 강화하고 공연예술 생태계 복원에 기여하는 데 큰 목적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공연의 연출을 맡은 오해룡 연출가는 "시공간을 초월한 듯 과거에서 미래까지 극의 빠른 전개에 맞춰 장면의 전환 기술과 특수조명 및 음향, 미디어아트 효과를 덧입혀 판타지적인 요소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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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전승자들의 힘찬 발걸음‘2020 이수자뎐(傳)’<안내 홍보물>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은 오는 8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공연장(전북 전주시)에서 ‘2020 <이수자뎐(傳)>’을 개최한다. 2014년 시작해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하는 <이수자뎐(傳)>은 매년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 이수자를 대상으로 작품을 공모·심사하여 선정된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지는 관심과 호응 속에 올해는 14대 1의 높은 경쟁률로 총 10편이 선정되어 무대에 오른다. 특히 올해 이수자뎐은 북청사자놀음을 주제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재창작된 연희극, 탈춤의 악(樂)을 무대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새로운 시선의 음악극, 문헌의 춤을 재연한 궁중무용 무(舞) 등 차세대 전승 주역인 이수자들이 깊은 고민 속에 새롭게 해석한 다채로운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먼저 8월에 시작되는 첫 공연은 ▲ 북청사자놀음을 재해석한 「백수지왕(百獸之王)」(김동환, 국가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이수자/8.1.), ▲ 악(樂)이 담고 있는 원뿌리를 헤아려 보는 「피리_악(樂), 가(歌), 무(舞)」(안형모, 국가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8.8.), ▲ 가곡의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이는 「추선(秋扇)」(하윤주,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8.15.), ▲ 전통을 지키며 새로움에 도전하는 「우리 춤으로 사계를 ‘담_譚’다!」(이지선,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8.22.), ▲ 아쟁의 매력을 표현하는 「깊이를 너비로 펼치다」(진민진, 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 제16호 아쟁산조 이수자/8.29.)의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 9월에는 ▲ 가야금병창 협주곡 「판소리 다섯 바탕전」(하선영,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9.5.), ▲ 음악의 합이 중심이 되어 연희의 ‘판’을 볼 수 있는「피리! 탈춤 판 위에 서다」(차원선·차민선·차은선, 국가무형문화재 제61호 은율탈춤 이수자/9.19.)의 무대가 펼쳐진다. 10월에는 ▲ 고종 30년 계사년(癸巳年) 정재무도홀기 문헌을 재현한 궁중무용 「무율_舞律」(복미경, 국가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이수자/10.17.), ▲ 대바람 소리의 당당한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죽풍당당_竹風堂堂」(홍석영,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이수자/10.24.), ▲ 살아있는 굿으로서의 농악의 백미를 엮어낸 「무명무위지락(無名無位之樂)을 꿈꾸다」(이명훈,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7-6호 고창농악 이수자/10.31.)의 무대가 마련된다. 공연 관람은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입구에서부터 손 소독, 명부작성, 1m 이상 거리두기 등을 준수하여야 한다. 공연장 출입부터 공연 후 공연장을 나갈 때까지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여야 하며, 마스크 미착용 시에는 공연 관람이 제한될 수 있다. 매회 공연은 사전예약으로 운영되며, 공연 10일 전부터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과 전화(☎063-280-1500, 1501)로 선착순 예약할 수 있다. 전석 무료이며, 공연과 관련된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을 참고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앞으로도 무형문화재 이수자들이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전승하고,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꾸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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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사회적 환경과 농악의 미래“우리농악은 24개국으로 구성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종합예술인 '농악'이 일년내내 다양한 형태와 목적으로 행해지고 공동체에 활력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한편, 인류의 창의성과 문화 다양성 증진에 이바지함으로써 국내외 다양한 공동체 간 대화 촉진과 무형문화유산 가시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 등을 인정해서 대한민국 '농악'의 유네스코등재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유네스코는 농악을 세계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고 발제자인 저는 결정문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년내내 다양한 형태와 목적으로 행해지고 공동체의 활력과 정체성을 제공하고, 인류의 창의성과 문화 다양성 증진에 기여 한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뛰고 온 몸이 뜨거워집니다.태산이 가까우면 고마움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농악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내재된 철학을 담보하는 표현 예술이었고 공동체를 견인하는 역동적인 삶의 구체적인 실천 예술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전통문화인 농악은 역사가 우리에게 물려준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에 어떻게 전승되어야 할지에 대해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과 발제자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으로 몇 가지 문제를 적시해서 공유하고자 합니다.1) 제도적 측면에서 농악제도적인 측면에서 전통문화는 역사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개인과 집단만의 책임으로는 계승과 전승에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무형문화유산 관리 차원에서 제도와 법만으로 지원정책과 보호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제도와 현실의 거리감은 현장의 농악인들에게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비난과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우리나라 무형문화재지정 및 목록 체계는 중앙정부 차원의 중요무형문화재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시도 무형문화재로 이원화되어 있습니다.농악은 마을 또는 면 단위 등 지리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무형유산으로서 중요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가 동일한 명칭은 없으며, 2014년 현재 정부가 지정한 중요무형문화재 6건과 13개 지방자치단체서 지정한 25건의 시도무형문화재 등 총 31건이 목록으로 등재되어 있다.(진주삼천포농악, 평택농악, 이리농악, 강릉농악, 임실필봉농악, 구례진수농악, 부산(부산농악), 대구(고산농악, 욱수농악), 인천(갈비고차농악), 광주(광산농악), 대전(웃다리농악), 경기(광명농악, 양주농악), 강원(평창둔전평농악, 원주매지농악), 충북(청주농악), 충남(부여세도두레풍장), 전북(부안농악, 정읍농악, 김제농악, 남원농악, 고창농악), 전남(화순한천농악, 우도농악, 고흥월포농악, 곡성죽도농악, 진도소포걸궁농악), 경북(청도차산농악, 금릉빗내농악), 경남(함안화천농악)이러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등재된 농악단은 그나마 미흡하지만 정책과 예산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미래 지향적인 연구나 기획에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십시일반의 자생적인 자구책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뿐만 아니라 마을 또는 면 단위 등에 존재하는 규모가 작은 농악은 존재 자체도 파악되지 못한 상태로 방치․방임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농악의 등용문격인 지방문화재 지정에도 일관된 심의나 관점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 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바뀌는 문화 환경 속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으로 정책과 제도의 보완을 통해 지방문화재 지정에 대한 시급성과 중요성을 자각하는 인식의 대전환을 통해, 보존과 계승에 필요한 지원의 일환으로 지방문화재 지정을 획기적으로 확대․지정해야 합니다. 문화유산은 다다익선입니다. 2) 정책의 집중이 필요한 이유인 농악모든 전통의 무형문화유산이 역사의 자산임에는 분명하지만 농악이 정책의 집중이 필요한 이유는 가무악의 종합예술을 집단적으로 펼치는 행위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일제 식민지 강점기에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가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민족문화의 말살의 정도가 극심하여 전통문화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문화단절의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겪었지만 질경이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전통의 흔적들을 지켜 왔으며, 해방 이후에는 불안정한 정세와 전쟁의 상흔으로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농악은 조국근대화라는 명분에 몰려 시달림을 받았고, 심지어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80년대에는 농악의 걸립이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에 의해 관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웃지못할 서글픈 파행의 시기를 지나온 농악의 역사적 단절은 한 세기라는 엄청난 단절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무형의 문화유산은 사람과 사람의 손과 정신, 기억에 의해 전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한 세기라는 단절된 공간의 전통문화의 복원과 계승도 정부의 정책과 농악인이 주체가 된 모색과 연구 고증을 통해, 역사가 주는 과제와 교훈을 적절하게 수행하면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예를 들자면 농악의 대동굿에 등장하는 양반, 포수, 아낙, 아이들 등 잡색들의 출연은 단순하게 흥을 돋구는 구색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계층간의 소통과 화합을 이루게 하려는 의도된 연출이라고 생각됩니다. 농악이 구현하려고 했던 철학과 이상, 그 시대 지역적 특성에 맞는 고민과 담론에 대한 체계적인 농악의 속속들이를 찾아내고 공감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전제한 내용들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농악의 시대적 의미를 재발견하고 미래의 세대에 까지도 우리 전통문화의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이렇게 독특한 무형문화유산은 결국 농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책의 방향이 집중되어야 하고 농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흥과 신명을 끌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역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계승하는 일은 말같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론)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 진다는 말이 있듯이, 전통문화는 급격하게 변하고 달라지는 문화 환경의 쓰나미 속에서 공감하며 지켜낸다는 것은 역사의 전령사라는 소명 의식 없이는 불가한 일인 것 같습니다.전통공연 연출 기획자이기도 했던 한국문화재단 진옥섭 이사장이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이표를 팔지 못하면 내 피를 팔아야 한다”는 절규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부족한 발제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대신해 주시고 이 자리에 와주신 농악인 여러분들의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치열한 토론으로 농악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토론회가 되기를 기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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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천하지대본 ' 북미정상회담 성공기원 축하공연■ 일시 : 2018년 6월 13일 15시 ■ 장소 : 광화문광장 일대 ■ 내용 : 축하길놀이 및 대동한마당 ■ 주최·주관 : 사)대한민국 농악연합회 ■ 주최 대한민국 농악연합회는 한국농악이 2014년 11월 27일 유네스코에 등재된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농악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를 중심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보존과 저변확대를 위해 각종 사업과 연구 활동을 일원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여 결성된 단체이다. ■ 참여단체 평창둔전평농악, 원주매지농악. 광명농악, 안성남사당풍물놀이, 양주농악, 청주농악, 청도차산농악, 금릉빗내농악, 함안화천농악, 부안농악, 정읍농악, 김제농악, 남원농악, 고창농악, 화순한천농악, 담양우도농악, 영광우도농악, 진도소포걸군농악, 강화열두가락농악, 대전웃다리농악, 욱수농악, 비산농악, 곡성죽동농악, 춘천농악, 경산중방농악, 동두천농악, 인천부평농악, 부천남사당농악, 양천전통농악, 용인농악, 화성농악, 김포농악, 구미무을농악, 성남오리뜰농악, 공주농악, 버꾸춤보존회, 노원예술단, 잔치마당, 사물놀이“진쇠”, 사물놀이“유흥”, 동작민속문화연구회“노들”, 동락연희단, 세한대학교“전통연희과”, 서울예술대학교“국악과”, 광명청소년예술단, 수원우리소리보존회 ■ 취지 종전 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70년의 고통스런 먼 길을 돌아 마주 앉았습니다. 몇 달전만해도 서로 핵버튼을 만지작거리던 두 정상이 제3국인 싱가폴에서 만나 한반도평화와 세계평화에 대해 논의합니다. 대한민국농악연합회는 논둑을 따라 나눔과 품앗이를 했던 두레의 마음을 모아 뜨거운 가슴으로 북과 장구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응원하려고 합니다. 총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 만들어 주십시오. 대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 만들어 주십시오. 남과 북이 하나되는 대동의 한반도를 만들어 주십시오. 기원하며 손이 부르트도록 북과 장구를 치겠습니다. 꿈만 같았던 남북의 길이 열려 한반도와 유라시아대륙을 오가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광화문이 떠나가도록 농악인 모두가 염원하겠습니다. 세계가 숨죽이고 주목하는 싱가폴에서 부디 질곡의 역사를 바로 펴는, 생명을 살려내는, 칠천만 겨레의 절절한 염원이 다다를 수 있도록 대한민국농악연합회는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준비위원장 이영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광명협의회장) 집행위원장 임웅수(사단법인 대한민국농악인연합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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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전통춤 평론집 <춤풍경>2016. 2. 25 / 신간 소개 전통춤 평론집 이 책은 전통춤이론가인 필자가 전통춤 공연 현장을 기록하고 리뷰한 글들을 모아 평론집으로 출간한 책이다. 4부 구성으로 편성하여, 1부 考. ‘전통춤의 역사와 원리’ 에서는 궁중무와 민속춤에서 전통춤의 원리로 거론될 수 있는 명제들을 분석했고, 현재 전통춤의 현황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살펴보았다. 2부 論. ‘승무 검무 살풀이춤 그리고 한량무’는 한국 전통춤의 주요 종목인 승무, 검무, 살풀이춤, 한량무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바를 언급했다. 3부 想. ‘전통춤의 다양성’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필자가 관찰한 전통춤 공연에 대한 기록이자 논평이다. 4부 提 ‘전통춤의 방법론과 미래’에서는 현행 전통춤 공연에서 우려할 사항과 지양해야 할 대목들, 또는 새로운 관점들을 제기하였다. 궁중무와 민속춤 각 계열의 춤 공연에 대한 리뷰 뿐만이 아니라, 전통춤의 주요 종목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전통춤의 방법론에 대한 제언도 포함하고 있다. 전통춤평론집 춤풍경 舞風景 김영희 지음 발행일 2016년 1월 25일 면 수 440면 판 형 신국판(소프트) ISBN 979-11-5516-515-7 93680 정 가 25,000원 발행인 김흥국 펴낸곳 도서출판 보고사 ❚목차 책머리에 추천사 채희완∥전통춤 관람은 문화재로서 교양체험이 아니라 살아 생동하는 예술체험인 것 추천사 김태원∥김영희 첫 춤평론집 출간에 부쳐 1부 考. 전통춤의 역사와 원리 춤은 八風을 행하는 것이다 춤은 그 모습을 짓는 것이다 한성준의 창의 정신과 열린 시야 최근 전통춤의 주요 현황과 특징 2부 論. 승무 검무 살풀이춤 그리고 한량무 승무의 미래와 승무의 과거 한국 춤의 역사에 등장한 검무의 양상 살풀이춤의 근대성 한량무의 기회 혹은 위기 3부 想. 전통춤의 다양성 왕조의 꿈 ‘태평서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궁중무의 새로운 공연방식 - ‘정재 들여다보기’와 ‘고종 오순 경축 연향’ 민속춤, 우리 춤의 또 다른 유산 -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을 보고 황해도굿의 당당한 이면, 황해도굿보존회의 ‘꽃맞이굿’ 기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주)서울옥션 특별기획전 ‘妓生’ 을 보고 광무대 재인들의 구극舊劇을 보셨습니까 -‘광무대 재인들의 발탈재담과 장님타령, 장대장타령’을 보고 80년 춤 인생 고스란히 - 宇峰 이매방 선생님 팔순 기념공연을 보고 ‘김수남 사진굿’에 온 굿에 목마른 사람들 - 굿사진가 김수남 추모 1주기를 맞아 조흥동의 한량무 무보집 발간공연과 한순서의 공연 ‘왕조의 꿈 태평서곡’, 창덕궁 공연의 의미 이애주 춤 ‘달의 노래’ - 경기 몸짓의 원류를 찾아서 원각사 백년 광대 백년 정동 명인뎐 - ‘안팎의 우리춤’을 보고 낯 설은 제주굿, 그래도 굿은 굿 -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을 보고 심소 김천흥선생 탄생 백년 기념 공연 ‘八舞傳’을 보고, 정범태선생과 구히서선생을 떠올리며 국립국악원의 새로운 국가 브랜드 명작 - ‘태평지악 -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 하용부춤판 전통춤 영역의 새로운 실험 무대 - ‘봄날, 우리 춤 속으로’ 우리 춤의 流가 더욱 別別해 지기를 기대하며 - ‘류별로 본 우리 춤 2009’ ‘왕의 춤’을 보고 예악당 무대에 올려진 을 보며 청산에 살어리 청산에 살어리 - ‘우리춤 神市 6인전’ 한순서 ‧ 이주희의 ‘모녀전승’ ‘고 양소운 선생 추모공연’을 다녀와서 전통춤 소극장 공연의 새로운 기류 장단 곶 디딤 마루를 부르는 ’배꽃춤판’ 서울교방의 ‘三人香’, 리을무용단의 ‘友樂’ - 2011년 가을, 새로운 해석과 전통을 담은 한국춤의 향연 ‘2人무 페스티발’의 전통춤 소극장 공연 전통춤에 대한 열린 시각, 한명옥드림무용단 ‘조율 II’ 소극장 전통춤 장기공연의 가능성 - ‘김수현 춤벗 열두마당’ 김천흥 선생 5주기 추모문화제 - 아쉬웠던 학술행사와 ‘처용랑’ 재연 시연 ‘강선영 불멸의 춤’ - 한성준 춤의 흔적을 찾아서 새로운 춤의 얼굴과 레파토리가 등장한 2013‘배꽃춤판’ 계통별 전통춤이 한 자리에 모인 ‘2013 팔무전’ 〈고깔소고춤〉의 명무 고 황재기 선생 10주기를 기리며 산조춤, 가슴에 담겨있는 심상(心像)을 그리는 춤 - 장승헌 기획 ‘산조예찬’ 서울시무용단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풍물굿의 다양한 개념이 도출된 ‘2013 팔도풍물굿쟁이전’ 왕성했던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예술적 욕구 - ‘4道4色’과 ‘신궁중정재’ 20세기 중후반 한국춤의 유산, 박금슬 - 박금슬 선생 탄신 90주년 기념공연 ‘족정정(足定丁)’ 신무용의 예술적 성과를 재평가해야 한다 - ‘신전통, 춤 복원에 지평을 열다’를 보고 김백봉 고유의 표현과 미감을 찾아 - 우리춤협회의 김백봉 헌정무대를 보고 한국무용사로 풀어낸 2014년 ‘한국춤 100選 열두마당’ 영친왕 환국 환영연의 흥미로운 재현 - 국립국악원 무용단 정기공연 ‘마지막 황태자, 조선의 꿈을 보다’ 국수호 의 풍격, 표일(飄逸) 한성준의 창의 정신과 열린 시야 - 한성준탄생 140주년을 기념하는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 진혼춤의 새로운 전형 - 심우성, 이애주, 최일순의 ‘넋전아리랑’ 한국전통문화연구원 ‘평양정재 연광정 연회’ - 민간의 풍류 넉넉한 교방정재 전통춤 공연의 문제의식을 제기하기를 기대하며 - 한국춤협회 전승춤 공연 한국 정신문화의 원류, 국립국악원 기획 ‘사직대제’ 1950, 60년대 전통춤의 흔적 - 『한국무용도감』으로 만난 예기 김정연의 춤 4월의 전통춤 공연이 보여준 새로운 시도들 - , , 풍류사랑방 수요춤전의 효과를 기대하며 - 국립국악원 무용단 ‘남무(男舞) 궁의 하루’와 ‘여무(女舞) Battle’ 교방춤과 무속춤의 외연을 넓힌 굿춤 한 판 - ‘정영만과 남해안별신굿 무관’을 보고 영성제(靈星祭)에 담긴 우리 춤의 형식, 철조(綴兆) 춤이 먼저인가 춤꾼이 먼저인가 - ‘화무 – 팔무전’을 보고 4부 提. 전통춤의 방법론과 미래 명무名舞는 여하(如何)한 것인가 - ‘전무후무全舞珝舞’ 공연에 대한 단상 치마춤과 바지춤에 대한 재고 교방춤과 마당춤의 기법은 다르다 – 모든 전통춤의 교방춤화를 우려하며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차별적인 전통을 위해 - 궁중무용의 변주 ‘2014검무전(劍舞展)’을 마치며 – 전통춤의 영역 확장과 인문 액자 속의 인형처럼 전통춤을 추시렵니까 찾아보기 ❚저자소개 김영희(金伶姬) 서울예고, 국민대 국사학과, 중앙대 대학원 무용학과를 거쳐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전통춤의 움직임에 드러난 風의 양상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개화기 이후 근대기생과 근현대 춤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고,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이다. 김영희춤연구소를 운영하며 2012년부터 매년 ‘검무전(劍舞展)’과 ‘검무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근현대예술사구술채록연구시리즈 『김천흥』(2004), 『양소운』(2005), 『이매방』(2006), 『문장원』(2006)을 작업했고, 『고창농악 고깔소고춤』(2004),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2006), 『매일신보 전통공연예술 관련기사 자료집』(2006), 『전설의 무희 최승희』(공저, 2013), 『한국춤통사』(공저, 2014) 외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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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회 판소리유파대제전 10.23제 45회 판소리유파대제전 1. 일시 : 2015년 10월 23일(금) 오후3시 2. 장소 : 고창 모양성제 특설무대 3. 주최 : 문화재청, 고창군 4. 주관 : (사)한국판소리보존회,(사)동리문화사업회 5. 문의 : 02-566-9457(한국판소리보존회) 6. 공연소개 오는 10월 23일(금) 오후3시, 제45회 판소리유파대제전이 문화재청과 고창군 주최로 고창 모양성제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동리 신재효 선생을 기리기 위한 이번 공연은 김세종 박사의 사회로 진행되며 고창농악보존회의 판굿으로 시작해 관극시 증정, 판소리 다섯바탕 중 눈대목과 입제창,민요등이 함께 어우러져 판을 벌이고 남사당보존회의 줄타기로 대미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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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新도리화가>5.18∼10.62012년 전북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전라북도가 공모한 한옥자원 활용 야간 상설공연이 열립니다. 고창이 가지고 있는 한옥자원과 문화유산을 자원으로 고창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하고 특색 있는 상설 무대를 선보일 예정인 이번 한옥자원 활용야간상설공연은 지역 전통문화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하여 고창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소중한 문화체험의 기회가 제공될 것입니다. 공 연 내 용 1. 오동나무집 이야기 고택을 중심으로 매굿(지신밟기)의 형태로 고택 구석구석을 풍물을 치면서 옛 고택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해설과 더불어 관객과 함께 공감하고 체험하는 참여형 프로그램 제공 2. 新도리화가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 선생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명창인 진채선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마당극을 통해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대사와 가사로 재창작 3. 오감만족, 체험의 즐거움 얼씨구!! 좋다∼ 체험마당에서 이루어지는 투호놀이, 제기차기, 판소리 등 다양한 민속놀이 체험으로 우리 전통과 향토성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진행 ·공연일정 : 2012.5.18∼10.6 매주 금·토요일 7시 30분 (체험마당 오후 2시∼5시) ·공연장소 : 고창 신재효 고택·고창읍성·고창동리국악당 ·주 최 : 전라북도 고창군 ·주 관 : 국악예술단 고창 ·참여단체 : (사)고창농악보존회 ·공연문의 : 고창군청 문화예술과 063-560-2453 고창문화의 전당 063-560-8041 국악예술단고창 063-564-4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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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농악의 대기록 [고창의 마을굿],[고창농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과 예술세계]고창농악의 대기록 [고창의 마을굿] [고창농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과 예술세계] 2권의 책 출간 전북무형문화재 제7-6호 고창농악보유단체 (사)고창농악보존회(회장 이명훈)가 [고창의 마을굿][고창농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과 예술세계] 2권의 책을 출간했다. 지난 2009년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진 고창만의 소리, 가락, 몸짓을 활자로 정리하여 100여년의 대기록 [고창농악] 출간에 이어 [고창의 마을굿][고창농악을 이어온 사람들의 삶과 예술세계] 2권 책의 발간으로 고창농악에 있어 활자 자료로써 하나로 집대성해 내어 후대에까지 고창농악의 가치를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 고창군의 후원으로 발간된 이 책은 고창농악 젊은 제자들이 1998년 현장조사를 시작하여 2005년부터 집필 6년여 동안의 노력 끝에 오늘에 출간되었다. 2권의 책은 고창군 22개 마을에서 연행되어온 마을굿과 고창농악을 발굴하고 이어온 고창농악 명인들과 원로선생님들 12명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기록하여 현장감을 주고 있다. 또한 고창농악 문굿, 도둑잽이굿, 풍장굿 재현과정을 생생하게 싣고 있다. (사)고창농악보존회 이명훈 회장은 “고창농악을 활자로 집대성하고자 총3권의 책을 기획했는데 1권 [고창농악]은 지난해에 발간되었고 마지막 과제로 2권의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고창농악을 오늘날까지 이어주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원로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고창농악을 정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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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11 월 5 일일 시 : 2008 년 11 월 5 일(수) 저녁 7시 30분 장 소 :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 문 의 : 063) 273-4823~4 전라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소리와 몸짓을 통해 전라도 문화의 뿌리와 힘을 느끼고 전라도 지역 전통의 명인들을 무대에 모시고 그분들의 춤과 가락을 복원하고자 한다. 무대를 통해서 발굴 복원된 전라도의 춤과 가락을 공연을 통해 전통예술의 원형을 널리 알리고 보급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프로그램 1.간이 잘 맞는 영․무장 농악 고깔소고춤 ” _ 고창농악보존회 고창 농악은 우도 굿의 뿌리인 늦은 삼채를 굿의 바탕으로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삼채굿, 외마치질굿, 덩더궁이를 부드럽고 다채롭게 연주하는 리듬적 기교를 고수하는 ‘두레굿과 판굿’의 옛 가락을 지켜오고 있다. 고창 농악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적 색채가 풍성한 쇠, 장구 가락과 고깔 소고춤이다. 2.“인간 희비를 넘나드는 농익은 춤사위” _ 문정근 전라삼현승무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독무로 민속무용중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춤이다. 현재 연원은 불교의식과 연관시킨 불교의식 무용설과 민속무용으로서의 유래설로 나눈다. 무대에서 보여질 전라삼현승무는 다른 승무와는 또 다른 멋이 있으며 내용과 승무북의 모양새에도 차이가 보여진다. 3.“전통가락에 실린 고운 몸짓” _ 계현순 태평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는 이 춤은 낙궁 터벌림 섭채 올림채 도살풀이 자진도살풀이 등으로 민속음악의 대표적인 가락과 장단이 고루 어우러져 매우 독특하다. 또한 춤이 경쾌하고 특이한 발짓 춤으로 우아하고 섬세하며 절도가 있다. 4.“공력이 깃든 소리” _ 송재영 / 춘향가 中 어사출도 후에 동헌경사대목 어사출도 후에 어사또가 춘향을 불러들여 신분을 속이며 춘향의 수청을 강요한다 .춘향은 어사또의 처사를 비웃으며 죽기로 고집하자 어사또는 웃으시며 이별시에 주었던 옥지환을 내어주며 본인이 이몽룡임을 암시한다. 춘향과 이도령은 서로 부둥켜안고 춘향모친과 함께 상봉을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5.“한갑득 流 거문고 산조” _ 김무길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는 백낙준․박석기를 거처 한갑득에게 전승된 산조로 백낙준의 가락보다 한갑득의 독자적인 가락이 더 많이 들어가 짜여 있으며 음계구조는 신쾌동류와 조금 차이를 보인다. 자출성(自出聲:오른손 술대로 연주하지 않고 왼손 식지나 모지로 줄을 뜯거나 쳐서 낸다)을 연속 사용해 왼손으로 음을 내는 소리가 잘 표현되어져 있는게 특징이다. 6..“춤과 가락의 신명난 어울림” _ 유명철 전라좌도 상쇠춤 지금까지 알려진 전라좌도 굿들은 모두 마을굿인데 반해 남원굿은 마을굿이 아니라 전문인의 굿이다. 가락, 진풀이, 상모놀음 등이 고르게 높은 수준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일명 ������개꼬리 상모������라 불리는 상쇠의 부들상모 놀이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원굿 유명철만이 보유하고 있는 기량이다. 7.“기막힌 가락고 감칠맛 나는 신명” _ 나금추 전라우도 상쇠춤 다져낸 기막힌 가락과 감칠맛 나는 신명은 풍물판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내는 힘이 있다. 여성의 섬세함과 정확한 빠르기로 돌리는 부포놀음에는 한치의 헛장단이 없다. 장단 사이마다 펼쳐지는 춤사위의 아름다움과 힘의 조화가 어우러진 선생의 상쇠춤에는 다져진 기량 위에 또 다져진 기묘함의 예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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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농악 고깔소고춤일 시: 2008 년 6 월 14 일 오후 16시,19시30분 (2회공연) 장 소: 국립국악원 우면당 문 의: 063- 562-2044 고창농악 고깔소고춤 현재 한국에서 공연되는 풍물 중 개인놀이는 상쇠놀이, 설장구, 북놀이, 채상소고가 주를 이루고 있다. 고깔소고의 개인놀이는 별로 공연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고깔소고는 전라우도농악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연행되었고, 분명한 춤제를 갖고 있는 종목이다. 80년대 명무전에 고 황재기선생이 고깔소고의 명인으로 공연하기도 했었다. 또 풍물판에서는 풍물소리에 맞춰 판 전체를 출렁거리고 너울거리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7-6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창농악의 고깔소고춤이 고깔소고의 역할과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고, 개인놀이로도 유일하게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그러므로 '고창농악 고깔소고춤'의 공연은 잊혀져가고 변질되고 있는 고깔소고춤의 본모습을 문화예술계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 ▶ 공연내용 - 1부 - 여는굿 · 어린이풍물패 고깔소고춤 · 고깔소고춤 선생님들을 기리며… (영상) · 판굿 - 2부 - 고깔소고춤 · 문굿 마당 · 풍장굿 마당 · 한가위 마당 ▶ 출연 고창농악보존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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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춤의 숨결- 고혜선 '나비의 꿈, 그 나비떼' 4월 7일일시 : 2007년 4월 7일 오후 7시 30분 장소 :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 문의 : 063-280-7000 어느날 새벽꿈속에서 나비의 꿈을 드려다 본 적이 있었다. 그 꿈속에서 나는 나비였다. 향그로운 바람 속이였다. 그 속에서 나는 그대로 향그로움 그것이었다. *고혜선 ㆍ모악당산제 재현 (지전춤 발굴) ㆍ전주성황제 부활 ㆍ중인초등학교, 해성ㆍ중고등학교, 전주대학교, 중국하얼빈 청일국제외국어학교 전주기접놀이부 창단 ㆍ‘鷄龍, 멈출 수 없는 날개짓’ 공연 ㆍ모스크바 초청공연 ㆍ중국 흑룡강성 정부 초청 ‘고혜선의 춤’ 공연 ㆍ서울시립무용단 역임 ㆍ대한민국해군 사관학교 출강 역임 ㆍ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 이수자 나빌레라무용 단장 전라도 춤 체험관 관장 *승무 임귀성 ㆍ민족문화예술 대상 (승무) ㆍ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 *진도북놀이 박희정 ㆍ장승천, 김길선 선생 사사 ㆍ의정부 단오제, 진도국악원, 한․일 우정의해, 양산국악협회 등 초청 진도북놀이 다수공연 ㆍ현재 풍물굿패 살판 예술감독 진도북놀이연구회 회장 *고깔소고춤 임성준 ㆍ황규언, 정창환, 유만종, 박용하 선생 사사 ㆍ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7-6호 고창농악 이수자 (사)고창농악보존회 사무국장 *설장구 이성호 ㆍ문정숙 선생 사사 ㆍ과천마당극제 개․폐막 조연출 ㆍ수원 화성 풍물축제 총연출 ㆍ현재 풍물굿패 삶터 대표 *프로그램* 1. 호남살풀이춤 :최선류의 전라북도 지방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이 춤은 남도무무의 계통으로 이른바 살(액:厄)을 푼다는 뜻이다. 귀신의 영력이 엄습해 오는 것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볍고 부드러운 흰 수건을 들고 독특한 살풀이장단에 맞춰 추는 춤인데 정중동의 미의 극치를 이루는 환상적인 무작으로 구성된다. 2. 이매방류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승무는 민속춤의 정수라 할 만큼 한국 춤의 모든 기법이 집약되어 있으며 품위와 격조 높은 예술형식의 춤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매방류의 승무는 힘차고 호화로운 장삼놀음과 경건함을 밟아가는 듯한 매서운 발의 디딤새 등이 특징이며 후반부의 법고의 타주는 고뇌를 해소하고자 하는 수도승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3. 진도북놀이 :풍물판에서 설장구라는 개인놀이가 발전되었듯이 진도북놀이는 진도의 풍물놀이에서 개인놀이로 발전된 것이다. 장구처럼 몸에 북을 고정시키고 양손으로 북을 치고 논다. 양손으로 북을 치니 힘이 있으면서도 다양한 가락이 발달했고 북이 몸에 고정되어 있으니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어 가락과 춤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북놀이로 작품화 되었다. 4. 설장구 (문정숙류) :설장구란 음력 정월 초하루를 '설날'이라 하듯이 '처음', '새로운', '가장 좋은' 의뜻을 지닌 '설' 이라는 말과 장구의 합성어로 풍물판에서 장구를 가장 잘 치는 사람, 혹은 그 사람이 치는 장구놀이를 말하는 것이다. 여성농악단 설장구는 1960년대 유행하였던 호남 여성농악단의 설장구로 당대의 설장구 명인인 김병섭, 이정범 등이 여성농악단에 전수했다는 가락으로, 현재 보존되고 있는 설장구 중에서도 꽤 오래된 것이며 명인들이 가락의 짜임을 완성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설장구여서 잊혀진 과거의 가락들이나 명인들의 더늠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값어치 있는 가락이다. 5. 고창소고춤 :농악에서 소고춤은 크게 머리에 채상을 쓰고 하는 채상소고춤과 고깔을 쓰고 하는 고깔 소고춤으로 나뉘는데 채상소고는 경기충청과 경상도, 호남좌도지역에서 크게 발달했으며 고깔소고는 호남우도지역에서 발달해 왔다. 호남우도지역에서도 고창지역의 고깔소고춤이 가장 멋진 춤사위로 발달했다. 현재 우도 뿐 만아니라 전국에서도 고깔소고춤의 멋진 춤사위를 간직한 곳은 고창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창의 고깔소고춤의 특징은 이채 덩더쿵, 굿거리, 반굿거리, 된굿거리가락에 꾸리북으로 소고를 돌리면서 춤사위를 멋들어지게 추는 것이다. 가락 중간 중간 맺고 풀음이 반복되면서 보여 지는 간들간들한 멋은 고창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고깔소고춤의 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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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풍류 한마당 9 ~ 13무제 문서 매주 일 요일 오후 3시 전주전통문화센터 놀이마당 일요 풍류 한마당 9 2005. 5. 1(일) 이리농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1-다호) 10 2005. 5. 8(일) 금릉빗내농악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8호) 11 2005. 5. 15(일) 고창농악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7-6호) 12 2005. 5. 22(일) 임실필봉농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 13 2005. 5. 29(일) 진주삼천포농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5. 1(일) 이리농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1-다호) 호남우도농악으로 익산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이리농악은 김제, 정읍등지에서 전문적으로 농악을 배워온 사람들을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수준의 농악단을 배출하였다. 특징을 살펴보면 상쇠의 부포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되어, 소고춤의 기법이나 진풀이가 많은 편으로 비교적 느린 가락을 사용한다. 그리고 영남농악과는 달리 쇠꾼과 장고잽이를 위주로 가락을 구사하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형 연주되어 리듬이 다채롭다. 풍류굿, 삼채굿에서는 악절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 이리농악은 마을사회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하는 민속예술로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5. 8(일) 금릉빗내농악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8호) 빗내마을에서 삼한시대의 나랏제사와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님께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하는 별신제가 섞여 매년 음력 1월 6일에 마을단위로 제사를 지내는 동제의 형태로 전승된 농악이다. 동제 때 농악놀이, 무당의 굿놀이, 줄다리기 등의 행사가 혼합되어 진풀이의 농악놀이로 발전한 것이 금릉빗내농악이다. 질굿, 문굿, 마당굿, 반죽굿, 도드레기, 영풍굿, 허굿, 기러기굿, 판굿, 채굿, 진굿, 지신굿 등 12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국농악놀이가 대부분 농사굿인데 비해 빗내농악은 군대행진용의 진굿으로, 가락이 매우 강렬하며 종류가 다양한 특징이 있다. 5. 15(일) 고창농악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7-6호) 호남우도농악의 중간이라는 영무장농악의 전통적 계보를 잇고 있는 농악으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아 간이 제일 맞다는 정평을 얻고 있다. 영무장농악은 영광, 고창, 장성, 함평 등지의 농악이 영광과 무장이 중심이 되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풍장굿·매굿·당산굿 등은 마을굿의 형태로 김매기 할 때와 정월대보름 전후 마을의 안녕과 풍요 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발전되었고, 문굿과 판굿은 전문적 활동을 하는 전문패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풍성하면서도 음악색깔이 짙은 삼채?질굿가락과 굿거리가락에 맞춰 추는 소고춤은 소고잽이의 멋이 잘 표현된 대목으로, 반굿거리와 된굿거리의 다양한 동작은 '꾸리북'이라고 불리는 동작과 어우러져 고깔소고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5. 22(일) 임실필봉농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 필봉리에 전승되고 있는 호남좌도농악으로 1920년경에 상쇠 박학삼을 초빙하여 그의 농악을 배우면서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농악단이 되었다.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르고, 쇠잡이는 상모를 쓰며 나머지는 고깔을 쓴다. 농기, 용기, 영 기, 긴 쇠나발, 사물, 법고, 잡색, 양반, 조리중, 쇠채만 든 농구, 각시, 화동과 무동으로 편성된다. 섣달 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 당산제굿, 보름굿, 징검다리에서 치는 노디굿, 걸궁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 판굿으로 구성이 되며 그중 판굿이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 쇠가락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가락이 힘차고 씩씩하며, 개개인의 기교보다 단체의 화합과 단결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 5. 29(일) 진주삼천포농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진주 삼천포지역에 전래되고 있는 농악으로 영남농악에 속한다. 꽹과리?징?장구?북?법고 등의 악기가 쓰이며, 기수?쇠?징?북?장구?법고?양반?포수로 편성된다. 농악수들은 흰바지와 색깔 있는 저고리를 입고 색띠를 두르며, 상모를 쓰고 연주를 하며 개인놀이가 비교적 발달하였다. 판굿에서는 특히 채상모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인 팔진해식진(八陣解式陣)굿이 특색이 있다. 대체로 빠른 가락으로 진행되며 힘차고 가락이 다채로워 흥겨움을 준다. 판굿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팔진법?버꾸놀이?상쇠놀이?무동놀이 등의 개인기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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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음악 - 박동지 명창, 황재기 명인故 박동진 명창 서거 1주기 추모음악회 판소리 완창의 선구자로 판소리 대중화에 앞장 서다 지난해 7월8일 타계한 故 인당 박동진 명창을 기리는 음악회가 9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렸다. 이날 최종민 전 국립창극단장의 해설로 진행되는 1주기 추모 음악회에는 인당의 회고 영상과 함께 살아 생전 그와 각별한 인연을 가진 명창들이 고인에게 헌화하는 주옥같은 판소리 눈대목으로 꾸며졌다. 평소 故 박동진 명창을 '오빠'라고 부르며 가까이 지냈던 오정숙 명창은 동초제 판소리 중 '춘향모와 어사가 상봉하는' 대목을, 박송희 명창은 故 박 옹의 장기인 중에서 '화초장 타령' 대목을, 송순섭 명창은 고인이 즐겨 불렀던 중 '적벽대전' 대목을, 안숙선 명창은 중 '황후가 된 심청이 부친을 상봉하는 대목'을 영원한 명창에게 헌화했다. 특히 이 행사를 계획하고 추진한 추모음악 준비위원인 강정자 명창은 고인이 보유했던 판소리 의 예능보유자 후보로 인정받은 터라 스승의 애창곡 중 '장승타령' 대목으로 스승을 대신해 청중들과 만났다. 故 박동진 명창은 생전에 7 8시간에 걸치는 , 등 판소리 완창과 , , 등의 공연을 통해 판소리 창작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이날 추모공연은 전석 초대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故 황재기 명인 1주기 추모행사 민중들의 삶을 대변해왔던 풍물은 지금까지도 민중의 소리로, 그리고 맥박으로 고동치고 있다. 당대를 대표했던 고깔소고의 명인 故 황재기(1922-2003) 1주기를 맞아 후학들에 의해 생애와 예술세계를 기리는 행사가 7월 11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마련됐다. 고깔소고 하나만으로 풍물판의 적자로 살다간 故 황재기명인은 그의 나이 25살에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소고 개인상을 수상할 만큼 탄탄한 기량을 보유한 명인으로 정읍농악단과 임방울창극단에서 민중들과 애환을 함께 한 예인이다. 특히 1966년부터 서울 국립국악원 농악부 강사로 재직하며 고창농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황재기명인은 그동안 '전라도 춤, 전라도 가락'과 고창농악 보존회에서 마련한 무대에 올라 자신만이 갖고 있던 나비처럼 사뿐 내려 앉았다가 가볍게 뛰어 회전하며 발을 들어 벅구를 치는 사위를 선보이는 등 마지막까지 예인으로 살다 갔다. 그래서 한 시대를 당당한 예인의 삶과 예술혼으로 살다간 사람들의 떠난 모습도 아름답다는 것을 故 황재기 명인의 사후 1주기를 맞아 펼쳐지는 행사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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